"도산팀이 도산할 판"…대형로펌의 푸념

입력 2021-07-13 17:17   수정 2021-07-14 00:17

“도산팀이 도산할 지경입니다.”

요즘 대형 로펌업계에서 도는 말이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영난으로 도산(회생 및 파산)하는 대기업이 자취를 감추자 대형로펌 도산팀들이 ‘일감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도산팀은 경영난을 겪는 기업의 회생과 파산, 매각 등에 대한 법률자문을 담당한다.
도산팀 축소하는 로펌들
현재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중인 대기업은 쌍용자동차 한 곳 정도다. “기업들의 위기대응 능력이 향상된 데다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 등에 힘입어 ‘버티기’ 중인 기업이 많다”는 게 로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법조계에선 “경영난에 봉착한 기업이 딱히 더 보이지 않아 대형로펌 도산팀의 수주난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형 로펌들은 최근 도산팀 규모를 축소해 운영 중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한때 100명 이상이던 도산팀 변호사 수를 30명 수준으로 줄였다. 광장도 15명에서 10명으로 축소했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쌍용차 외에 로펌 도산팀이 맡을 만한 기업으로는 이스타항공 정도가 있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며 “파산하는 대기업이 좀처럼 나오지 않자 대형 로펌 도산팀 변호사들이 인수합병(M&A), 기업자문 등 다른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진행되는 쌍용자동차 법인회생 및 M&A 절차는 세종이 자문을 맡고 있다. 도산팀의 원조 격인 세종은 2010년대 초반 웅진, 동양그룹이 도산했을 때 35명 규모의 팀을 운영했다. 지금은 20명 수준에서 유동적으로 운영 중이다.

최복기 세종 도산팀 변호사는 “작은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소형 로펌, 개인 변호사 사무실 등에 파산 및 회생 업무를 맡긴다”며 “이런 기업들이 적지 않지만, 대형 로펌이 맡을 만한 대기업은 이와 뚜렷한 온도차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파산은 345건으로 전년 동기(433건) 대비 20.3% 감소했다. 이는 꾸준하게 늘고 있는 개인파산 건수와 대비된다. 올해 1~5월 개인파산은 2만1024건으로 전년 동기(1만9218건)보다 8.6% 증가했다.

로펌업계에선 그 배경으로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첫손에 꼽았다. 정부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려운 기업들을 위한 정책 지원에 나서고 있고, 은행들도 채무상환 유예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기업들의 위기관리 능력이 향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형 로펌의 M&A 전문 변호사는 “1~2년 전만 해도 ‘다음 차례는 A그룹’이라는 얘기가 종종 돌았지만 지금은 쏙 들어갔다”며 “대기업 중에 ‘위험 신호’를 보내는 곳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설 자리 잃는 법정관리인들
도산하는 기업이 줄자 법정관리인, 구조조정 담당 임원(CRO)도 울상이다. 2006년부터 법정관리에서 경영자 관리인(DIP) 제도가 시행되면서 ‘좁은 문’이 된 법정관리인 자리가 더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DIP는 회생기업의 기존 경영자가 법정관리인이 되는 제도다. 현재 회생기업 10곳 중 8~9곳이 DIP를 시행하고 있다.

CRO은 회생계획안 작성을 도와주는 등 법정관리에서 일종의 ‘조언자’ 역할을 한다. 2011년부터 관련 제도가 시행됐으며 CRO로 위촉되면 일정액의 월급을 받고 일하게 된다. 한 법정관리인은 “법정관리인, CRO가 되기 위해 관련 교육을 수료하는 인원이 매년 늘어나지만 이들이 갈 수 있는 자리는 극히 한정된 상황”이라며 “법원도 성과를 낸 경력자 선호하는 분위기여서 갈수록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석/남정민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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