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중국이 글로벌 시장 경제로 편입되면서 값싼 노동력이 크게 늘어난 것도 물가를 낮추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 및 식품을 제외한 미 근원 인플레이션이 1990년 이후 20년 동안 18% 오르는 데 그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반면 상품이 아닌 서비스 물가는 같은 기간 147% 급등했다. 미국에서 각종 서비스까지 수입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의 블러리나 우루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오랫동안 무역 상대국에서 디플레이션을 수입해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전자상거래 발달도 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한 일등공신으로 지목된다. 이른바 ‘아마존 효과’다. 2017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아마존이 촉발한 온라인 가격 경쟁이 근원 물가상승률을 매년 최대 0.1%포인트 끌어내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가속화하고 있는 고령화도 물가엔 부정적 요인이다. 미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작년 기준 16.6%로, 10년 전(13.0%)보다 3.6%포인트 상승했다. 유엔은 2030년엔 20.3%로 높아져 미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컨설팅 업체인 토킹헤드의 마노즈 프라단 창업자는 “고령자가 늘면 생산량이 줄어들고 소비가 증가하기 때문에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정타를 날린 건 팬데믹이다. 원자재 및 부품 공급난을 겪고 있는 기업이 일제히 가격 인상에 불을 댕기고 있다. 일각에선 1970년대와 같은 고물가 시대를 맞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6월 CPI 상승분(5.4%)은 2008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이며 시장 추정치(다우존스 조사 기준 5%)를 웃돌았다. 빠른 수요 회복과 공급망 교란, 운송비 상승 등이 반영됐다.
미국 중앙은행(Fed) 내에서도 물가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뉴욕연방은행은 앞으로 12개월간의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4.8%로 집계했다. 2013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다. 향후 3년간의 기대 물가상승률은 3.6%였다.
다만 현재의 물가 압력은 공급망 병목 때문에 빚어진 것이어서 머지않아 2%대 저물가 시대로 복귀할 것이란 게 Fed 내 지배적인 시각이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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