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 기자] 꿈이라고 불리던 모든 것들에는 그에 발하는 여정이 숨겨져 있다. 누군가 ‘꿈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오직 그 목표가 성취된 순간’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건 본질의 가치를 새기지 못했을 때.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꿈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자유롭고 전진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1988년 첫 앨범을 발매한 뒤 무속인 활동을 이어온 파파금파. 32년 만에 가수의 꿈을 다시 찾게 된 그는 이제 막 씨앗을 올려놓은 듯 무연하고 대담한 모습이었다. “가수의 꿈을 다시 한번 펼쳐보지 않으면 큰 후회를 하게 될 것 같았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목표에 대한 발자취와 그 시작점을 조금씩 질문해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정규 2집 ‘내 맘에 꽃바람’을 발매한 그. “6월 중순에 2집 앨범을 발매했다. 추가열 선생님의 곡 ‘내 맘에 꽃바람’과 ‘나폴리의 밤’을 앨범에 담았는데 선생님께서 직접 디렉팅까지 도와주셔서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작년 9월 첫 싱글 ‘인생은 회전목마’는 트로트와 샹송을 버무려 만든 곡. 이번 신곡들은 그에 비해 어떤 부분이 다를까 묻자 그는 “1집의 경우 급하게 시작하다 보니 곡 선택에 있어서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옷을 입어야 사람이 편안한 것처럼 음악을 선택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의 요소라고 생각한다”라며 “2집은 그런 점들을 보완하여 좀 더 쉽게 편하게 부를 수 있는 곡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라고 답했다.
32년 만에 가수의 꿈을 다시 찾게 된 그.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그러자 파파금파는 “1988년에 첫 앨범을 발매하고 갑작스레 군대 입대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든다면 나 자신에게 후회될 부분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됐다”라며 “가수의 꿈을 다시 한번 펼쳐보지 않으면 큰 후회를 하게 될 것 같더라”라고 웃으며 말했다.
희망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인생은 회전목마’. 그는 이에 대해 “많은 분들이 가사를 참 좋아해 주신다. 작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들이 불편하고 어려운 환경이 되었지 않나.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래 가사에 대해 공감하고 좋아해 주신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가수 더원이 당시 싱글 음반 디렉팅도 맡았다고. 파파금파는 “많은 도움을 받았고 배움도 얻었다. 소중한 인연인 만큼 아직도 좋은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라며 그 인연을 설명했다.
무속인인 데다가 50대의 나이에 신인 가수의 길을 걷기란 쉽지 않을 일. 새로운 여정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일까 묻자 “요즘 ‘부캐’ 문화가 열풍이다. 마찬가지로 무속인의 길은 나에게 있어서 ‘본캐’이고, 가수의 길은 나의 꿈을 위한 ‘부캐’라고 할 수 있다”라며 “무속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등이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라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굿으로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했을 정도로 명망이 높은 그. 이러한 가수 활동이 본인의 무속 생활에 흠이 될 거라는 염려는 없는지 묻자 “가수를 시작해서 스타가 되고자 하는 목표는 없다. 앞에서 말했듯 나란 사람에게는 꿈의 일부였고 그 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굿 문화를 어떤 계기로 세계에 알리게 됐을까. 이에 대해 파파금파는 “굿이라는 문화가 한국 사람들에게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굿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전통예술 중의 하나”라고 답하며 “종교적 의미보다는 우리나라의 전통예술을 세계에 알린다는 의미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라고 이었다. 덧붙여서 “세계에서 우리의 굿을 인정해 준다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층 더 인정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카네기홀 공연을 진행하게 됐다”라고 답했다.
끝으로 어떤 가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자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꿈을 이룬, 그리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존재로 남고 싶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권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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