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빚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결손가정이나 극빈층에 해당하는 사례가 많아 법적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법상 피상속인이 사망할 경우 재산 뿐 아니라 채무도 함께 상속자에게 넘어간다. 상속인이 과도한 빚을 상속받지 않기 위해선 '상속개시(사망)'를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내 법원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신청해야한다. 상속포기는 상속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재산과 빚 모두 후순위 상속인에게 넘어간다. 한정승인은 상속 재산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는 것을 뜻한다. 빚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을 때는 그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내에 '특별 한정승인'을 신청하는 제도도 있다.
하지만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경우 이 같은 장치를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미성년자 본인이 아닌, 법정 대리인이 인지한 시점을 기준으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신청기한을 산정하고 있어서다. 오동한 법무법인 열림 변호사는 "아이는 빚을 상속받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더라도 한 부모나 조부모 등 법정 대리인이 인지한지 3개월이 넘으면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신청할 수 없어 구제받을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상훈 공익법센터장은 "부모가 이혼해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8살 아이가 사망한 아버지의 빚을 떠안게 된 사례도 있다"며 "어린 아이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혼한 어머니가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해주지 않으면 결국 채권자로부터 재산을 압류당하는 등 강제집행이 되거나 개인파산을 신청해야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성년자의 과도한 채무 상속을 막는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독일, 프랑스 등은 미성년 상속인을 보호하는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며 "한국도 미성년자가 상속재산 이상의 채무를 승계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 등은 최근 빚 대물림 방지와 관련한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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