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수십년째 독점체제를 구축한 동남아시아 시장이 전기자동차를 앞세운 현대자동차와 중국 브랜드에 위협받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 진단했다. 전기차 투자경쟁에서 밀리면 과거 가전제품과 핸드폰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이 지역 시장을 내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대차는 태국과 함께 동남아시아 양대 자동차 시장인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근교에 1700억엔(약 1조7825억엔)을 들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신설 공장의 생산능력은 연간 15만대로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53만대)의 약 30%에 달한다.
현대차는 연내 이 공장에서 가솔린차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현지 보도를 인용해 현대차가 2022년부터 이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도네시아는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사실상 독점하는 시장이다. 일본차 점유율이 96.8%다. 도요타자동차가 30.3%, 다이아쓰공업과 혼다가 각각 17.1%, 13.8%, 나머지 일본차 브랜드가 35.6%를 점유하고 있다. 비(非)일본차 점유율은 3.2%에 불과하다. 일본 차 업계는 1960년대부터 동남아시아에 공장을 건설해 이 지역 시장에 진출했다.
현대차가 인도네시아 공장 건설을 결정한 것은 2019년 11월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경제협력협정(EPA)을 체결한 시기다. EPA 체결로 한국에서 수입하는 자동차 부품 대부분의 관세가 철폐돼 한국차가 일본차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9년 대통령령으로 국내 신차의 20%를 전기차로 전환하기로 하고 이와 관련한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다. 2013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시행한 소형 친환경차 진흥책의 지원을 받아 이미 설비투자를 마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추가투자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 차 업체들이 숨고르기하는 틈을 노려 인도네시아 시장에 뛰어든 게 현대차다.
일본차 점유율이 88%에 달하는 태국 시장에서도 중국 창청자동차가 연산 8만대 규모의 전기차 설비를 완성해 '일본 타도'에 나섰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태국과 인도네시아 모두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전기차 투자에 신중한 이유로 들고 있다. 전기차 보급만 확대해서는 온실가스 배출 삭감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주력 친환경차가 하이브리드차량인 점도 전기차 투자에 소극적인 배경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전기차 투자경쟁에서 밀리면 한국과 중국에 이 지역 가전과 핸드폰 시장을 빼앗긴 것처럼 자동차 시장 점유율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이 신문은 우려했다.
도요타와 상용차 전문 브랜드인 히노자동차, 이스즈, 경차·경트럭 전문업체인 스즈키와 다이하쓰가 21일 공동 상용차 개발회사 설립을 발표한 것도 동남아 시장 수성 전략의 하나로 풀이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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