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문 대통령 지시는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의 서면브리핑을 통해 알려졌는데요. 브리핑을 인용한 기사들이 쏟아지자 정작 금융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선 문 대통령의 지시를 직접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도규상 부위원장은 모두 이날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 일정 탓에 청와대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박 대변인이 전한 청와대 서면브리핑도 달랑 저 한 문장에 불과했습니다. 어떠한 추가적인 배경 설명도 없었지요. 금융당국조차 어떠한 맥락에서 지시가 나온 것인지 알 길이 없었던 겁니다.
언론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한 매체가 '문 대통령, "성실히 상환한 연체자들 신용회복 지원하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기사를 송고하면서 인터넷에서는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안했다', '처녀가 임신을 했다'는 등 비아냥 섞인 댓글들이 쏟아졌지요.
논란이 커지자 박 대변인이 청와대 출입기자단에게 "(문 대통령이) 저소득, 저신용자에 대한 서민금융 공급 확대 실적을 점검하면서,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불가피하게 대출 연체가 되는 서민들이 많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보라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가 해명했지만 의문점이 모두 속시원하게 해소된 건 아니었습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코로나19 지원 대책을 살펴보더라도 이번 대통령 지시가 다소 뜬금없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3월말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해 과거 원리금 연체, 자본잠식, 폐업 등 부실이 없는 경우 모든 금융권 대출에 대해 원금 상환 만기 연장 및 이자 납입을 유예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같은 조치는 당시 6개월간 한시적으로 시행됐지만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코로나19 장기화 등을 이유로 두 차례나 연장됐지요. 지난달말 기준으로 금융권이 대출금 만기를 연장해주고 이자상환을 유예해준 액수만 총 204조원에 달합니다.
이런 덕분에 금융권 대출 연체율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지난 3월 0.28%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4월과 5월엔 소폭 올랐다고는 하지만 0.32%로 여전히 낮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론 유예 조치가 종료되는 9월부턴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연체 자체가 발생하지도 않는데 이 가운데 성실 상환자를 가려내고, 신용 회복을 지원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금융위 측은 대통령 지시가 하달된 만큼 관련 부서 간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무리 촘촘하게 설계된 코로나19 대책이었지만 사각지대가 전혀 없다고 볼 순 없다"면서 "대통령 지시에 따라 조만간 관련 부서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코로나19 이후 신용점수가 하락한 차주 가운데 구제 가능 범위와 요건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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