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유치 실패했던 日…40년 뒤 외교 성적표도 '처참'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입력 2021-07-24 10:00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쎄울!”이라는 외침과 함께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이날 바덴바덴에서 열린 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을 발표한 것입니다. 서울은 당시 북한의 엄청난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IOC 위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공산권 국가들로부터도 고른 지지를 받습니다. 특히 공산권이던 동유럽과 남미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당시 서울과 1988년 올림픽 개최를 두고 경쟁하던 유일한 도시는 일본 나고야였습니다. 당시 올림픽 유치전은 이스라엘 올림픽 대표팀을 상대로 한 테러가 일어난 1972년 뮌헨 올림픽과,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으로 인해 많은 도시들이 유치 계획을 철회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당시 ‘유일한 선진국’의 후보 도시던 나고야는 개최가 거의 확실시되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은 고도성장으로 경제 1위 대국을 넘보던 일본을 견제하는 미국과, 한국이 수교하고 있던 유일한 주요국이었던 대만(중화민국), 그리고 한국 자체 표까지 총 3표만 나올 것이라는 조소가 섞인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52 대 27, 서울의 압승이었습니다. 한국보다 2년 앞선 1977년부터 올림픽 유치를 준비하고, 그에 앞서 1964년 도쿄올림픽,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을 이미 유치한 경험이 있는 일본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치 실패 후 일본에서는 ‘당연히 한국에 질 줄은 몰랐다’는 자만심 때문에 올림픽 개최를 빼앗겼다는 자조 섞인 여론이 팽배했다고 전해집니다.
바덴바덴 총회 40년뒤 도쿄에서 오른 성화
바덴바덴 총회로부터 40년 뒤, 도쿄에서 성화가 불타올랐습니다. 도쿄가 올림픽을 유치한 것은 1964년 올림픽 이후 57년만, 일본이 올림픽을 유치한 것은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23년만입니다.

2020 도쿄올림픽 유치 과정은 치열했습니다. 도쿄와 함께 최종 경쟁 도시는 스페인 마드리드와 터키 이스탄불이었습니다. 1981년 바덴바덴에서 “쎄울”을 외쳤던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이 직접 노구를 이끌고 지지를 호소한 마드리드와, 아시아와 유럽이 교차하는 독특한 지리적 이점에다가 최초의 이슬람 국가 유치를 내세운 이스탄불은 도쿄의 매우 강력한 경쟁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도쿄는 일본 정부의 강력한 유치전으로 승리합니다. 1차 투표에서 도쿄가 42표, 이스탄불과 마드리드가 각각 26표를 받습니다. 동점이 나온 이스탄불과 마드리드가 재투표를 펼쳐 이스탄불이 근소한 차로 결선 투표에 올라갔고 결국 도쿄가 60대 36으로 압승합니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참사에서 일어나는 ‘부흥의 올림픽’을 내세웁니다.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부터 일본의 재건과 성장을 내세웠던 1964년 올림픽과 비슷한 콘셉트입니다. 일본 정부도 이 때문에 올림픽 개최와 준비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당시 슈퍼마리오 분장을 하고 2016 리우올림픽 폐막식에 등장해 2020 올림픽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상 초유의 올림픽 1년 연기가 결정됩니다. ‘2020 올림픽’의 타이틀은 유지하되 1년을 연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당초 개최되기로 했던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1년 뒤인 지난 23일 도쿄올림픽은 사상 최초의 무관중 올림픽으로 개막합니다. 개회식도 나루히토 일왕,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등 내빈 및 관계자들과 각국의 선수단을 제외한 일반인의 관람이 제한됐습니다. 6만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경기장에는 950명 뿐이었습니다.
특수를 노렸던 '올림픽 외교'도 실종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 속에서 일본이 꿈꿨던 올림픽 특수의 꿈도 사실상 물거품이 됐습니다. 올림픽의 경제 특수는 기본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하는 전 세계의 선수단과 관계자들의 관광과 그에 따른 지출, 올림픽 준비를 위한 각종 인프라 개발, 각종 기업들의 광고 및 홍보 효과 등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선수단에 사실상 격리 수준에 가까운 방역 지침을 내리고 있어 예년과 같은 경제 효과를 노릴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경제 효과는 커녕 올림픽을 계기로 한 ‘외교 특수’까지도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스가 총리가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일본을 방문한 정상급 인사와 ‘마라톤 회담’을 시작했지만 일본을 찾은 정상급 인사는 턱없이 적습니다. 국가 원수 급의 정상은 사실상 2024 하계올림픽 개최지인 파리를 대표해서 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일하고, 그 밖에 15명의 정상급 인사는 미국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 오윤엔델 몽골 총리,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등입니다.

코로나19 만큼은 아니지만 지카바이러스 유행으로 전세계가 우려의 눈길을 보냈던 2016 리우올림픽에 40개국의 정상급 인사가, 2012 런던올림픽에 80개국의 정상급 인사가 찾은 것과 비교하면 처참한 성적표입니다. 하계올림픽에 비해 정치적인 중량감이 매우 떨어지는 동계올림픽임에도 불구하고 2018 평창올림픽에도 21명의 정상급 인사가 참석했습니다. 특히 평창올림픽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등 북한 정권 수뇌부가 참석해 주목을 받으며 높은 외교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이번에 양국이 실무협상 단계에서 큰 진전을 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이 무산된 것이 일본의 올림픽 외교전에는 적잖은 타격이 됐습니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지지층이 방일에 부정적이라 무산돼도 정치적인 타격은 적은 반면,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의 정상회담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기에는 정치적인 타격이 너무 크고 무산시키자니 올림픽의 성공 개최 측면에서는 악수인 딜레마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죠.

불과 올 초까지만 해도 ‘인류가 코로나를 극복한 증거’로 도쿄올림픽을 제시하겠다던 스가 총리의 말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도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의 독도 표기, 한국 선수촌 앞에서의 욱일기 시위 등으로 올림픽이 엄격히 금지하는 정치적인 논란은 물밀듯이 쏟아졌습니다. 30여년 전 올림픽 유치전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심혈을 기울여 이번 올림픽을 준비한 일본이지만, 자국 언론에서까지 유치전에는 성공했지만 외교전에서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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