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초승달 아래
가지를 말린다
십자로 빨랫줄에 널린 흰 풋달의 냄새
지금이 어느 땐데
나물 한 봉지 얼른 사 오면 되는데
적보랏빛 밤
이때란다
지금
혓바늘 같은 초승달에 아린 맛 도는 때
시집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문학과지성사) 中
뭐든 때가 있어요. 아이가 강낭콩을 심었더니, 싹이 자라서 어느새 넝쿨을 치고 꽃을 피우고 열매가 달려 있네요. 폭염주의보 내린 날이면 더위가 물러갈 무렵, 아이가 물을 줍니다. 물을 준다는 것은 강낭콩에게 안부를 묻는 일과 같아요. 넝쿨이 “십자로 빨랫줄까지 뻗어” 갈 모양인데요. 아이가 넝쿨이 때에 맞춰 쭉쭉 뻗어나가라고, 옷걸이를 펴서 받침대를 하나 세워두었지요. 요즘은 저 식물이 자라는 밤이 좋네요.
이소연 시인(2014 한경신춘문예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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