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수요예측 흥행 저조…'대어불패' 공식 깨지나

입력 2021-07-28 06:22   수정 2021-07-2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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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하반기 기업공개(IPO) 최대어인 크래프톤이 기관 투자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최근 대어들의 경쟁률이 1000 대 1을 훌쩍 넘어선 반면 나홀로 세자릿수 경쟁률에 그쳤다. 공모 규모가 큰 데다 공모가가 높게 책정돼 기관들이 보수적으로 접근했다는 분석이다.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지난 14일부터 27일 오후 5시까지 기관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경쟁률은 수백 대 1 수준으로 알려졌다. 최종 집계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나 400~500 대 1 선에 머무른 것으로 추정된다. 희망공모가(40만~49만8000원)의 하단을 제시한 기관도 있었다. 대부분의 기관들이 공모가 상단 이상을 써내는 최근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올해 수요예측을 진행한 기업 중 세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한 회사는 4곳 뿐이다. 올 여름 개막한 공모주 슈퍼위크에 등판하는 대어들과 비교해도 크래프톤의 경쟁률은 낮은 편에 속한다. 최근 수요예측을 진행한 카카오뱅크는 수요예측에서 173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기관들이 써낸 금액은 사상 최대인 2585조원이었다. 이달 상장한 SD바이오센서도 114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 26~27일 수요예측을 진행한 HK이노엔 역시 경쟁률이 1500 대 1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크래프톤의 공모 규모가 다른 대어들의 2~3배로 큰 탓에 기관 투자가들이 소극적으로 주문을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관들은 공모주를 많이 받기 위해 수요예측에서 인수 능력을 초과하는 물량을 신청하는데, 크래프톤은 물량이 많아 주문한 수량대로 주식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크래프톤의 공모 규모는 공모가 상단 기준 4조3000억원으로 삼성생명(약 4조9000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크다. 기관에게 배정된 물량만 3조원 어치에 달한다.

공모 주식의 20%에 달하는 우리사주조합(173만846주) 청약에서도 미달 물량이 대거 나와 기관 배정 물량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오버슈팅' 대신 실수요적 관점에서 접근한 기관들이 많았다는 해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기관들은 일반청약과 달리 증거금을 내지 않는데다 무조건 최고가와 최고 수량을 써내기 때문에 경쟁률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그럼에도 카카오뱅크를 비롯한 대어들이 모두 1000 대 1을 훌쩍 넘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기 때문에 크래프톤이 흥행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수요예측 기간을 늘린 것도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기업들이 통상적으로 이틀 간 수요예측을 받는 것과 달리 크래프톤은 지난 14일부터 약 이주일 간 수요예측 진행했다. 해외 기관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 사이 대어들의 공모 일정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관심이 분산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주관사 측은 크래프톤이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번 수요예측은 전체 공모 주식수의 55~75%(475만9826~649만672주)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공모가 상단 기준으로 500 대 1의 경쟁률을 적용하면 주문 금액이 약 1500조에 달하기 때문에 적은 규모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증권가는 크래프톤이 공모가 상단을 고수할지 주목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금융감독원의 지적을 받고 희망공모가를 45만8000~55만7000원에서 10% 하향 조정했다. 공모가를 최상단인 49만8000원으로 결정한다면 시가총액은 24조3000억여원이다. 넥슨(21조7000억원), 엔씨소프트(17조7000억원)을 제치고 단숨에 국내 게임 대장주가 된다.

증권가는 수요예측의 여파로 일반 청약 열기마저 사그라들 경우 상장 후 주가가 부진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010년 삼성생명 상장 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크래프톤은 오는 29일 공모가를 확정 공시한 뒤 다음달 2~3일 일반 공모 청약에 나선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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