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화학제품 등에 상계관세를 적극적으로 부과하기로 하고 제도마련에 착수했다. 한국 철강업계는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도 상계관세를 부과받았기 때문에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상계관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올 가을 미국과 유럽연합(EU), 호주, 브라질 등 5개 국가·지역과 정보공유 협의체를 신설한다. 중국의 철강제품과 한국의 철강, 알루미늄, 화학제품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달 중순 미국 정부는 포스코와 동국제강, KG동부제철 등 36개 기업의 도금강판에 10% 수준의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일본이 상계관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한국 철강기업들이 첫번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상계관세는 수출국 정부의 과도한 보조금에 힘입어 가격을 낮춘 수출품에 수입국 정부가 보조금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부과하는 관세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인정하는 무역구제조치의 하나다.
또다른 무역구제조치인 반덤핑관세는 수출국의 국내가격보다 싼 값에 수출되는 제품에 부과할 수 있다. 상계관세는 수출국의 국내가격과 수출가격이 같더라도 보조금 덕분에 가격을 낮춘 것으로 인정되면 부과가 가능하기 때문에 적용범위가 넓다.
반면 수출국 정부가 정보를 충실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과도한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 실행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WTO가 발족한 1995년 이래 미국과 EU가 173건과 45건의 상계관세를 부과한 반면 일본은 부과 사례가 1건 뿐이다. 일본이 유일하게 상계관세를 부과한 대상이 2006년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제품이었다.
일본이 미국과 EU 등과 정보공유 협의체를 신설하는 것도 상계관세 부과실적이 많은 나라로부터 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정보와 조사방법을 전수받기 위해서로 분석된다. 상계관세를 가장 많이 부과한 미국, EU와는 정기적으로 정보공유 회의를 열 방침이다.
미국은 최근 수년간 중국산 철강에 대해 여러차례 상계관세를 매겼다. EU는 지난해 중국의 광역경제구상인 '일대일로'의 투자를 받은 이집트 기업의 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지급한 보조금까지 수출국 정부가 지급한 보조금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경제산업성은 기업이 정부에 상계관세를 요청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을 담은 지침도 만들기로 했다. 상계관세를 부과하려면 피해를 입은 기업이 경제산업성에 신청을 해야 하지만 제도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제산업성의 자문기구인 산업구조심의회가 오는 9월 초순까지 구체적인 지침을 내놓을 계획이다.
일본 정부가 상계관세를 적극 부과하기로 방침을 바꿈에 따라 한국과의 교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일본은 2019년 한국의 조선산업 지원이 부당하다며 WTO에 제소했을 때도 한국 정부에 “과거 10년치 상세 지원 내역을 제출하라”며 압박한 적이 있다. 대우조선해양 공적자금 투입 등 굵직한 사업 외에 소규모 지원까지 확인해 부당 지원금으로 결론이 나면 상계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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