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BTS 단상, 콘텐츠 산업의 파워

입력 2021-08-01 17:26   수정 2021-08-02 00:20

1980년대 중·고등학생들은 팝송을 많이 들었다. 가요보다 팝송의 수준이 높다고들 했다. 매주 나오는 빌보드 차트를 달달 외우며 으쓱거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뮤직비디오를 볼 방법이 없던 시절 미군 채널 AFKN은 영상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줬다. 마이클 잭슨, 프린스, 마돈나의 시대였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2012년 어느 주말. 한가하게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 채널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부르고 있는 외국인이 나왔다. 장소는 프랑스 파리. 문화적 자부심이 엄청난 프랑스 젊은이들이 아시아 조그만 나라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다니. 강남스타일이 그해 세계적 히트곡이었을지라도 1980년대 팝송에 빠졌던 세대에는 충격이었다.
ABBA와 스웨덴 경제
또 10년이 흘렀다. 사건은 더 커졌다. BTS(방탄소년단)는 세계 음악시장을 정복했다. 9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 자신의 곡(Permission to Dance)이 또 다른 곡(Butter)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하는 이변도 일으켰다. 그룹으로는 비틀스와 보이즈투맨 정도가 해냈던 일이다.

BTS의 활약은 1970년대 스웨덴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대 후반 스웨덴 수출 품목 1위는 볼보자동차였고, 2위는 아바(ABBA)의 음반이었다. 전 세계에 3억70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한 ABBA는 볼보와 함께 스웨덴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1970년대 스웨덴과 2020년대 한국은 다르다. 스웨덴 콘텐츠산업은 음악에 집중돼 있었다. 한국이 갖고 있는 포트폴리오는 다양하다. BTS가 이끄는 K팝,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뿐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K드라마가 전 세계 순위 상위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다. 게임, 웹툰, 웹소설도 글로벌 시장이 주 무대가 된 지 오래다.

한국 콘텐츠산업의 성장은 숫자로도 알 수 있다. 작년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은 125조원을 넘어섰다. 게임 K팝 드라마 영화 웹툰 등 콘텐츠 관련 국내 상장 기업의 시가총액 합계는 130조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작년 콘텐츠 수출도 108억달러에 육박했다.

한국의 콘텐츠산업은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바꾼 한국 제조업과도 비교할 만하다. 제조업은 선진 기업을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콘텐츠산업은 그 수준을 넘어 패스트 팔로어와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 사이 어디쯤엔가 있다. 한국의 대표적 콘텐츠 기업인 CJ ENM과 엔씨소프트 네이버 카카오 하이브 등은 다양한 제휴를 통해 세상에 없던 모델을 만들고 있다.
국격을 높이는 산업
국격을 높인 것은 공통점이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렸다. 콘텐츠산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효과를 돌려주고 있다. 언어와 문화의 확산, 이를 통한 수출 증가와 관광객 유치 등. 과거 “정부가 아닌 싸이가 국격을 높였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논평은 타당하게 들린다.

그래도 숙제는 있다. 콘텐츠 강국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스웨덴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인구 1000만 명의 작은 나라가 음악 강국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교육이다. 스웨덴 학교는 학생들이 한 개 이상 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가르친다. 1980년대부터는 록과 팝을 교육과정에 넣었다. 어린 시절부터 능동적 음악 소비자가 됨으로써 전체 음악 수준을 높여준다. 정부의 역할은 ‘환경 조성자’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 문화산업에 대한 이해가 있는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무리인 줄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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