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의 지난 1일 담화는 북한의 김씨 일가가 대한민국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있는지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남관계를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 “남조선 측이 큰 용단을 내릴지 예의주시할 것”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목덜미라도 움켜쥔 듯 얕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겁박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군사훈련에 대해 늘어놨던 말에 비춰도 억지와 생떼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작년 3월 원산에서 화력전투훈련을 실시했을 때 “그 누구를 위협하고자 훈련한 것이 아니다. 나라의 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군대에 훈련은 주업이고 자위적 행동”이라고 말한 장본인이 김여정이다. 청와대가 유감을 표명하자 내놓은 담화에서였다. “(단거리발사체 중단을 요구한)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한다”며 “겁먹은 개가 더 요란하다”는 막말까지 퍼부었다. 자기들이 하는 군사훈련은 ‘주업이고 자위적 행동’이지만 대한민국의 훈련은 ‘침략전쟁 연습’이라는 억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행어가 된 ‘내로남불(내가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남이 하는 건 못된 일)’의 전형이다. 내로남불 소리를 듣는 정부여서 이런 억지를 마냥 당하고 있는 건가.
청와대가 김여정의 궤변과 도발을 묵묵부답으로 받아넘기자 더 황당하고 거친 ‘말폭탄’이 본격화됐다. ‘삶은 소대가리’ ‘특등 머저리’ 등으로 문 대통령을 대놓고 조롱한 10여 차례 담화의 절정은 “태생적인 바보 아니면 판별능력마저 완전히 상실한 떼떼(말더듬이)”라는 지난 3월의 발표문이었다. 문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북한의 유연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이런 능욕을 쏟아냈다.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것은 김여정의 이런 겁박과 도발이 먹혀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작년 6월 우리 국민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금지하는)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하자 정부는 즉각 전단금지법 마련에 들어갔고, 야당이 반대하자 여당의 단독처리로 법을 확정했다. ‘김여정 하명(下命)법’으로까지 불리며 국제사회로부터 “북한 정권 눈치를 보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이란 지적을 받았는데도 강행했다. 이후 통일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 등에 대해 김여정이 비난하고 협박하는 담화를 내놓자 장관이 교체됐다. 이번 김여정 담화로 한·미 연합훈련이 영향을 받으면 ‘김여정 하명의 다섯 번째 이행’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문 대통령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결기를 보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가 2년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 말을 한 이튿날 북한은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하는 것으로 곧장 응수했다.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이 절정을 치닫던 당시 문 대통령이 “남북한 경제협력으로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을 꺼냈을 때도 북한은 “맞을 짓을 하지 말라”며 발사체 두 발을 쏘아댔다.
대한민국 주권과 안보 수호를 다짐한 문 대통령의 어록이 많지만, 2017년 4월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의 발언이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다. 북한이 대한민국 대통령 공백기를 틈타 미사일 발사 등 도발 수위를 높이며 ‘4월 위기설’이 증폭되던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는 “내 모든 것을 걸고 한반도 전쟁을 막겠다.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지금, 그는 김정은이 두려워하기는커녕 여동생을 내세워 마구 뭉개고 깔보는 존재가 됐다. 대한민국은 뼈에 새겨야 할 교훈을 얻었다. 국가 안보를 미사여구(美辭麗句)만으로 지킬 순 없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존엄과 자존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킬 결기를 가진 국민과 정부에 의해서만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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