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커지는 블라인드 채용 부작용…이래서 섣부른 정책이 무섭다

입력 2021-08-06 17:28   수정 2021-08-07 00:03

공공기관들의 지난해 ‘청년(15~34세) 의무고용’ 실적이 크게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신규 채용해야 하는 436곳 중 67곳(15.4%)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미이행률이 전년(10.6%)보다 4.8%포인트 높다. 말끝마다 청년을 앞세우며 현금·일자리·집을 다 퍼줄 것처럼 하던 정부가 최소한의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니 실망스럽다. 더욱 당혹스러운 점은 의무고용에 실패한 공공기관 4곳 중 1곳이 그 이유로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꼽은 점이다. 입사지원서를 통해 출신지 학력 학점 신체조건은 물론이고 나이도 확인할 수 없어 의무고용률 달성에 실패했다니, 무슨 코미디인가 싶을 만큼 허탈하다.

블라인드 채용은 이런 부작용이 누차 경고돼 왔다. 학력차별 방지를 주된 목표로 내걸었지만 학력에 따른 차이가 더 벌어지는 추세다. 어려운 필기시험으로 변별력을 강화하다 보니 소위 ‘SKY 대학’ 비중은 그대로고 오히려 고졸 채용만 줄었다. 경제·경영학, 논술 등의 시험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이공계 전공자가 고전하는 양상도 뚜렷하다. 마치 대입 수시전형처럼 자기소개서 비중이 커져 자소서 대필업체가 성행하는 낯 뜨거운 풍속도도 낳았다.

더 심각한 문제도 많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과학기술 연구분야에까지 획일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이 적용되는 게 대표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25개 출연연구기관 연구원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7명이 블라인드 채용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국가보안시설인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중국인이 합격해 취소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블라인드 채용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워 2017년 공공 부문에 전면 도입됐다.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 민간에서도 적용을 확대하는 추세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작용이 속속 드러난 만큼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청년의무고용률을 채우기 위해 외모가 젊어보이는 이들을 어림짐작으로 뽑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는 탁월한 한 명의 인재를 뽑으려고 거액의 스카우트전까지 불사한다.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차이를 식별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원하는 인재를 뽑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국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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