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불편한 핑퐁게임 [최진석의 Law Street]

입력 2021-08-08 07:00   수정 2021-08-08 07:25

“공수처는 기소권 없는 사건의 경우 불기소 결정도 할 수 없다.”

대검찰청이 최근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사는 공소제기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서만 불기소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식화 한 겁니다.

이 논리에 따른다면 공수처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공수처의 ‘1호 수사’ 대상인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기소할 수 없고, 불기소 결정도 내릴 수 없는 겁니다.

대검이 이 같은 해석을 내린 근거는 공수처법 제3조 1항 2호입니다. 이는 공수처의 공소제기 대상을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등으로 자세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대검은 “공수처법은 법이 정한 사건을 제외한 고위공직자 사건의 공소제기 여부 결정을 공수처 검사가 하지 않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수처의 입장은 이와 다릅니다. 공수처법 제27조가 근거입니다. ‘공수처장은 고위공직자범죄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하는 때 관련 범죄 사건을 대검찰청에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기소 결정 대상 범죄를 언급하면서도 기소권 없는 사건을 설명하지 않으므로 모든 고위공직자 사건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이 같은 내용은 공수처가 지난 5월 조 교육감 사건에 ‘2021년 공제 1호’ 사건 번호를 부여하면서 이미 예견됐습니다. 이번에 대검이 공개적으로 해석을 내놓으면서 앞으로 조 교육감에 대한 기소·불기소 결정을 두고 검찰과 공수처 간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과 공수처가 신경전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올해 1월21일 공수처가 출범한 이후 두 기관은 수차례 갈등을 이어왔습니다. 검사 비위사건의 관할, 유보부 이첩 등 내용도 다양합니다.

지난달에는 검사 비위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두고 부딪혔습니다. 대검이 ‘수사처 이첩 대상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검토’라는 문건을 통해 “검사 비위사건의 경우 혐의가 발견되지 않으면 공수처에 해당 사건을 넘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수처는 반대 입장을 내놨습니다. 공수처 설립 배경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막기 위함인 점을 감안하면, 검사 비위사건을 공수처가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죠. 김진욱 공수처장은 “검사의 비위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도록 한 공수처법 25조 2항의 원안에는 (공수처가) 전속적 관할이라고 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공수처와 검찰은 지난 3월 이른바 ‘기소권 유보부 이첩’ 문제를 두고 처음 맞붙었습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의 기소권을 둘러싼 내용입니다. 쟁점은 공수처가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을 때 최종 기소권을 누가 갖느냐입니다. 당시 공수처는 이성윤 서울고검장 사건과 이규원 검사 사건 등을 검찰에 재이첩하면서 최종 기소권은 공수처가 행사하겠다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규원 검사를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법원도 지난 6월 이규원 검사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제기가 위법하다는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검찰 손을 들어줬습니다. 물론 항소심에서 이 판단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는 만큼 어느쪽의 주장이 맞는지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공수처 출범 후 검찰과 공수처가 사사건건 상이한 해석을 내놓고 대립하면서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심지어 서류 전달 방식을 두고 두 기관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공수처는 대검에 사건을 이첩할 때 줄곧 직원들이 직접 서류를 실어 날랐는데, 검찰은 공수처로 이첩할 때 대부분 우편으로 보냈다는 겁니다. 당시 공수처 관계자는 “대검에 우편으로 보내도 되는지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정기적으로 직원 두 명이 과천에서 서초동까지 가느라 다른 일을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정 볼썽사나운 신경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같은 갈등의 배경에는 해석의 여지가 엉성한 공수처법이 있습니다. 신설 부처와 기존 부처가 수사권, 기소권 등의 분담을 두고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죠. 문제는 이런 신경전으로 인해 정부의 범죄대응 역량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겁니다. 두 기관이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동안 수사 진척 속도는 느려지고 기소의 품질도 저하될 수 있는 것이죠.

공수처가 출범한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오랜 진통 끝에 탄생한 부처인 만큼 이를 지켜보는 시선도 많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섞여있죠. 그런데 지금까지 지나온 행보를 보자면 기대보다는 우려와 실망의 연속입니다.

두 기관이 조속히 협의체를 가동해 소모전을 종식해야 합니다. 불편한 핑퐁게임이 길어질수록 정의의 공백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