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더 빨라진 전기車 시대, 노사 모두 '발등의 불'이다

입력 2021-08-08 17:29   수정 2021-08-09 08:00

미국이 2030년까지 자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절반을 ‘무공해차(ZEV)’로 전환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발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제너럴모터스(GM)·포드 등의 대표가 함께한 서명식과 공동 성명은 전기자동차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미 정부와 자동차업계가 공동 대응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팔린 전기차 위주 ZEV 비중이 2%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9년 뒤 50% 판매 계획은 대단히 담대하고 모험적으로 평가된다. ‘저탄소·친환경’ 구호 아래 차세대 자동차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미국의 의지가 그만큼 강력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전기차 선점 경쟁은, 지난달 유럽연합(EU)이 발표한 ‘기후변화정책 종합패키지(fit-for-55)’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EU의 이 방침과 미국의 무공해차 정책을 묶어 “세계 자동차산업에 군비경쟁이 시작됐다”는 월가 분석까지 나왔다. 전기차 경쟁을 글로벌 산업전쟁으로 보는 것이다.

앞선 미국과 EU의 ‘전기차 전쟁’은 한국 자동차산업에 기회일까, 위기일까. 전기차 시대가 빨라지면서 당장 미국에 큰 장이 펼쳐지겠지만 한국 메이커들은 낙관할 상황이 못 된다. 가격경쟁력과 기술력, 생산 규모, 내연기관 중심의 부품 생태계, 정부 보조금 조정 같은 과제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의지만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속도를 낼 수 있다.

보다 큰 문제는 구조적인 데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전략적 판단과 선택이 더없이 중요해진 가운데, 강성 노동조합의 행보가 더 걱정인 게 사실이다. 미국 정부가 ‘전기차 시대’를 공식 예고한 날 포드는 1000명, 혼다는 2000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전기차는 부품이 내연기관의 70%밖에 필요하지 않으니 생산 공정 변화를 위한 준비다. ‘구조조정’이라는 말 자체가 금기어가 돼 버린 국내 업계와 대비된다. 한국 자동차업계는 최대 시장인 미국 현지 생산도 노조가 반대하면 불가능할 정도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달 임금협상에서 최근 6~7년 새 최대의 기본급 인상과 성과·격려금을 받아냈다. 기아 노조는 이번주에 파업 찬반 투표를 한다. 르노삼성과 한국GM도 아슬아슬하다.

그간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말할 때 낮은 생산성과 높은 임금, 잦은 파업이 주로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발등의 불로 다가온 전기차 시대는 이런 차원을 넘어 자동차산업의 빅뱅을 가져올 것이다. 노사 모두에 진짜 위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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