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 일각에선 20대 대통령 경선 예비 후보들의 직·간접적인 후원과 지원 요청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주52시간 근무제 확대 시행,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어려워진 형편이라 예전과 같은 후원은 어려울 전망이다. 또 당선이 유력한 후보도 아직 보이지 않은 상황이라 누굴 도와야할 지 난감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하순 5~6명의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은 한 지역 식당에 모여 각 대선 예비 후보캠프측의 후원 요청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여러 대선 예비 후보 캠프측에선 친인척 지인 등을 통해 접근해 ‘힘을 보태달라’며 후원금 및 경선시 여론 지원을 읍소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또 일부 후보는 모 중소기업 단체장과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에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큰 자리를 줄테니 중소기업계 세 규합을 도와달라”는 제안도 직·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여야 후보 모두 (후원) 요청은 많이 오는데, 당선될만한 후보를 알 수가 없어 누구를 후원해야할 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다 관련 단체가 많고 조직력도 탄탄해 대선 예비 후보자들에게는 인기 포섭 대상이다. 중소기업 수는 664만개로 종사자수만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83.1%인 1710만명에 달해 여론 영향력도 상당하다. 현재 중소기업 관련 단체는 중소기업중앙회 등 50여개로 업종별로 975개의 조합이 형성돼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선거비용 제한액의 5%인 25억6545만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중소기업 사장이나 단체장, 협동조합 이사장들은 개인 자격으로 한 후보당 1000만원까지 후원이 가능하다. 이들은 대부분 기업 오너로 직원이나 친인척을 동원할 경우 더 큰 금액의 후원도 가능하다. 불법이긴 하지만 내부 고발자가 나오지 않는 한 밝히기 어렵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제3자를 통해 지원하는 ‘쓰리 쿠션’후원으로 수억원 후원도 가능하다”며 “각 후보 캠프측도 이러한 방식을 알기 때문에 대놓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정치권의 후원 요청이 쏟아지는 데 이를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특정 후보에게만 후원할 수도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수도권 한 기계가공업체 사장은 “특정 후보만 후원할 경우 알려질 경우 향후 정치적 보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보험 성격의 소액으로 여러 후보에 골고루 후원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방 중소기업 사장도 “지난 19대 대선은 갑자기 치뤄졌고 유력 후보도 정해졌기 때문에 후원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다르다”며 “앞으로 본선에 더 후원을 요청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단체 임원은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 시행,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중소기업계를 위기로 내몬 정책들이 쏟아질때 어떤 후보도 적극 반대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해 확실하게 규제를 풀겠다는 후보에 후원이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야당 예비 후보 가운데, 최근 잇따라 주52시간 근무제 확대 시행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중소기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법 전문가들은 중소기업계가 대선을 앞두고 불법 선거 자금을 모집하는 브로커를 조심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선거사건을 많이 다뤘던 부장검사 출신인 이상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특정 후보와 친하다며 접근해 나중에 기업에 대한 규제와 행정 편의를 봐주겠다며 한도이상의 후원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며 “법적 태두리를 벗어난 후원금 모집 행위는 횡령 내지 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특정 후보에 후원금을 몰아주기위해 직원이나 친인척들을 동원해 ‘쪼개기 후원’을 하는 것도 법 위반이 맞지만 이를 밝혀내 처벌하려면 내부 고발자가 나와야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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