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전개되는 글로벌 반도체 대전 와중에 전해진 소식이지만, 사면이 아니라 가석방이라는 점에서 반가움보다는 아쉬움과 찜찜함이 더 크다. 이 부회장을 수감할 때처럼 풀어줄 때도 정치적 계산을 앞세웠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가석방 소식을 전하면서 “경제 상황, 여론, 모범적 수용생활을 감안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계와 국민 여론은 물론이고 여당 일각에서도 사면을 주장하는 상황인지라 군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사면 결정 시 감당해야 할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핵심 지지층의 반발과 정치적 부담을 의식해 가석방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위성과 지지층 사이에서 어정쩡한 결론 뒤에 숨은 셈이다.
정부는 생색내고 싶을지 모르지만 무엇을 위한 결정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 후에도 최고경영자 복귀가 힘들고 경영활동에 집중할 수 없다. 남은 형기 동안 재범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조건이 달린 조치여서 ‘취업 제한’이 그대로 적용된다. 해외 출장도 제한된다. 출국 시 법무부 심사를 거쳐 출국 목적이 명확할 때만 승인해주는 방식이라 글로벌 기업 경영자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힘들다. 더구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프로포폴 투약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손발 묶고 뛰라는 것과 다름없다.
이 부회장의 수감 사유가 국정농단이라는 정치색 짙은 재판이란 점도 되돌아봐야 한다. 이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으로 행한 경영행위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덧씌워 장기 수감하는 것이 정의인지 의문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원칙적으로 신중하게 최소한으로 행사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국민 다수의 여론이 있고 정당성이 있는 경우라면 과감히 결단할 필요도 있다. 그게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한 이유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여론과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잠시 형을 멈추는 가석방으로 족쇄를 걸고 있어야 한다는 식의 정략적 국정 운영은 이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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