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국민 누구나 최대 1000만원의 ‘기본대출’을 장기간 저리로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국민 1인당 1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을 제공하고, 법정 최고금리를 연 10% 수준으로 인하해 금융 혜택을 전 국민에게 제공하겠다는 약속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신용등급 시스템과 금융회사의 대출 심사 기능을 무시하는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사는 10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본소득(생활보장), 기본주택(주거권)에 이어 자신의 정책 브랜드인 ‘기본시리즈’의 3호 공약인 기본대출 공약을 발표했다. 이 지사는 “금융에 가장 취약한 2030 청년에서 시작해 전 국민으로 기본대출을 확대하겠다”며 “금융 혜택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기본대출의 구조나 재원 규모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이재명 캠프의 박찬대 수석대변인이 간담회 중 “이론적으로 5000만 국민에게 1000만원을 대출하고, 이 중 2%에 해당하는 금액을 정부가 보증한다면 1조원에 불과한 예산으로도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이 지사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나중에 사고가 날 수 있다”며 수습에 나섰다.
현재 연 20%인 법정 최고금리를 경제성장률의 다섯 배 이내로 하향하겠다는 공약도 등장했다. 이 지사는 “최고금리를 연 10~15% 수준까지 낮춰 이자 제한을 넘긴 불법 대출은 계약 전부를 무효화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지사의 기본대출 공약이 전례가 없고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금융업종을 담당하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최대 수백조원의 대출금을 신용등급 평가도, 담보도 없이 보증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통상 은행의 대출 부실률이 2%에 불과하다지만, 과거 정부가 100% 보증한 금융상품인 햇살론17은 출시 1년 만에 대위변제율(보증기관의 대리상환 비율)이 10%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한다는 공약도 금융 취약층을 대상으로 한 불법 사금융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과 교수는 “이미 문재인 정부 들어 법정 최고금리를 연 27.9%에서 20%로 인하한 결과 40만 명에 이르는 금융소비자가 시장에서 퇴출됐는데, 연 10%까지 최고금리를 내리면 대출 불가 대상이 수백만 명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지사는 “연 20% 금리의 대출을 받는 이들은 애초에 대출을 받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을 위한 대출상품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불량식품을 ‘서민 먹거리’로 둬야 한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전 국민 주치의 제도’ 도입을 공약했다. 가까운 동네병원에 있는 전담 의사가 환자를 맞춤형으로 관리하도록 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과잉진료 문제도 해결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의료 선택권을 제한할 여지가 있는 데다 비용과 인력 수급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전 국민 주치의 제도 범국민운동본부와 정책 협약식을 맺고 전 국민 주치의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주치의 제도는 동네 병·의원 등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국민 개개인의 질병을 관리해주는 전담 의사를 두는 것을 뜻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미국 영국 등 20개국이 주치의 제도를 갖고 있다.
1차 의료기관의 주치의가 개인의 병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경우 중복·과잉 검사와 처방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 대표 측 설명이다.
이 전 대표는 “과거 대통령에게만 있던 주치의를 모든 국민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라며 “고령화 시대에 발생할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소개했다. 향후 10년간 시범사업과 특별법 제정 등을 거쳐 전국화를 추진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주치의 도입은 과거 대통령선거에서도 많은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심상정 당시 정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비슷한 ‘단골의사제도’를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혈압과 당뇨 등 일부 만성질환 환자를 1차 의료기관 소속 의사가 지속 관리하는 ‘만성질환관리제’를 공약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부터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주치의 도입에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환자들이 이미 다양한 등급의 병원을 쉽게 찾아갈 수 있고 대형 병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의사협회는 “주치의가 가정의학과·내과·소아과 등 일부 진료과에 제한되고 병원 사이에 등록환자 유치 경쟁 등이 벌어질 경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인력 양성 비용 등 재정적인 문제도 주치의 제도 도입에 걸림돌로 꼽힌다.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달 주치의 도입에 필요한 1차 의료기관 전공의·수련의 양성에 연간 2310억원가량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이날 공약 발표에서 예상 소요 재원 등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형주/이선아/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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