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는 12일 발표한 ‘미국의 플랫폼 반독점 법안 도입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미국과 다른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인수합병(M&A) 제한 등 미국과 같은 강력한 반독점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혁신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신생 기업의 경우 투자회수 수단으로 M&A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KDI가 분석한 미국의 반독점 패키지는 △타사에 불이익 주는 행위 금지 △이해상충 사업 행위 금지 △플랫폼 간 데이터 이동성 보장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 제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시장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조치다. 예를 들어 아마존이 자사 상품을 더 유리한 조건으로 판매하고, 잠재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인위적인 기업 M&A 등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KDI는 이 같은 미국의 강력한 규제책을 그대로 국내 온라인 플랫폼에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봤다. 검색 시장의 88.4%를 장악한 구글, 전자상거래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한 아마존과 같은 독점적 사업자가 아직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은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한 다수의 플랫폼이 경쟁 중이라는 게 KDI의 진단이다. 예를 들어 커머스는 쿠팡, 배달 부문은 배달의민족, 숙박·여행은 야놀자, 지도·내비게이션은 티맵 등 다양한 플랫폼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경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KDI는 공정위가 제정한 온라인플랫폼법의 규율 대상과 실태 조사에서 기업 부담을 추가로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온라인플랫폼법의 규율 대상은 ‘매출액 100억원 이상이거나 중개거래액이 1000억원 이상인 플랫폼’이다. 미국은 규제 대상 플랫폼을 △미국 내 월간 활성 사용자 수 5000만 명 이상 △연간 순매출 또는 시가총액 6000억달러(약 700조원) 이상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KDI는 “미국과 비교해도 온라인 플랫폼법의 규율 대상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며 “현재 도·소매업 중소기업 기준이 매출 1000억원임을 참고해 규율 범위를 더 좁힐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온라인 플랫폼법의 실태조사 조항은 플랫폼 사업자뿐 아니라 이용업체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실태조사의 긍정적 효과를 유지하면서 소상공인의 규제 순응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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