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터넷이 교묘히 숨긴 권력의 통제와 감시

입력 2021-08-12 18:25   수정 2021-08-13 02:10

2011년 이집트 혁명의 주역인 시민운동가 와엘 고님은 “사회를 해방시키고 싶다면 인터넷만 있으면 된다”고 자신있게 선언했다. 페이스북으로 반정부 시위의 불을 지핀 그다운 말이었다. 하지만 5년 뒤 그는 테드(TED) 강연에서 “사회보다 인터넷 해방이 먼저”라고 입장을 바꿨다. 이집트 혁명 이후 인터넷 공간에서 정치세력 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국론 분열과 혼란이 극심해졌고, 2013년 이를 틈탄 군부의 쿠데타로 또다시 독재정권이 들어선 게 배경이었다. 인터넷 덕에 일군 혁명이 인터넷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맞춤형 뉴스 제공에 따른 확증편향 강화, 개인정보 침해 및 유출, 댓글 조작을 통한 선거 개입…. 인터넷이 민주주의와 개인의 삶에 마냥 축복은 아니라는 건 이제 상식이 됐다. 박승일 서강대 미디어융합연구소 선임연구원의 《기계, 권력, 사회》는 인터넷의 역기능이 작동하는 구조를 사회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인터넷의 발달로 권력의 감시와 통제가 전보다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진단한다. 권력이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고도 각자가 처한 환경과 정신세계를 바꿀 수 있게 됐다는 것. 예컨대 예전 독재자들은 여론 통제를 위해 신문과 방송 등 언론 매체에 직접 간섭했지만 지금은 포털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알고리즘만 바꾸면 간단히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미셸 푸코를 비롯해 수많은 사회과학자가 주창한 개념들을 빌려와 논증을 전개한다. 그중 일본 철학자 모리오카 마사히로의 ‘동물원의 비유’를 인용한 대목이 눈에 띈다. 동물원의 구조가 철창에서 사파리로 바뀐다고 해서 동물들이 근본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듯, 인터넷으로 권력의 통제가 약화됐다는 통념도 착각이라는 것이다.

책의 대부분은 사회과학 용어를 이용한 논증으로 구성돼 있어 학술 논문의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모든 이가 자본의 ‘신자유주의 통치권력’에 착취되고 있다는 단편적 세계관이 논증의 기반이라는 점은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현상 분석에 치중하느라 미래 예측이 없는 점도 아쉽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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