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주요 독일사 개설서에서 ‘역사시대’는 보통 2000여 년 전 로마시대부터 시작한다. 타키투스 등 로마인이 남긴 게르만 각 부족에 대한 설명에서 자국 역사의 근원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나치 집권기에는 설명이 조금 달랐다. 독일의 역사저술가 헤르베르트 로젠도르퍼에 따르면 나치 집권기에는 “5000년 역사의 독일”이라는 문구가 널리 퍼졌다. 기원이 더 오래될수록 민족사가 더 빛날 것이란 생각에 따라 별다른 근거도 없이 ‘1만 년 독일사’를 운운하는 표현도 유통됐다. 하지만 독일인의 기원은 생각보다 훨씬 불명확했다. 로마시대 게르만족의 역사를 그대로 단선적으로 독일사로 서술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로마인이 지칭했던 ‘게르만족’의 범위도 너무 광범위했다. 로마인들이 ‘게르마니아’라고 부른 것은 로마제국 북부 국경 지역에 사는 여러 부족을 통칭하는 표현이었을 뿐이다. 로마인에게 게르만인은 그저 정확한 발원지도 알기 어려운 “건강한 금발의 짐승 같은 족속”이거나 “싸움꾼”에 불과했을 뿐이다.
이 같은 배경 아래 독일의 문호 괴테와 실러는 “독일, 어디에 그런 나라가 있는가? 그런 나라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토로했고, 유명 역사학자 토마스 니퍼다이가 “태초에 나폴레옹이 있었다”고 요약할 만큼 오늘날 독일이 존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독일 침략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떻든 간에 2세기 이후 산발적으로, 4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여기저기서 떠밀린 게르만족은 대대적인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아들 스틸리코는 젊은 시절인 383년 외교 사절단의 일원으로 페르시아에 가서 샤푸르 3세와 협상할 정도로 큰 인물이 됐다. 당시 스틸리코의 활약상을 눈여겨본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그를 자신의 조카딸이자 양녀인 세레나와 결혼시켰다. 황제의 사위가 된 스틸리코는 4세기 후반 로마제국 군대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용병 중 한 명이었다. 385년께 근위대장으로 임명됐고, 393년께 육군 총사령관이 됐다. 로마의 군대는 게르만화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상태였다.
스틸리코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두 아들을 보호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다. 사실상 동서 로마제국을 혼자 통치한 마지막 황제인 테오도시우스는 두 아들에게 로마제국의 관할권을 물려줬다. 첫째인 아르카디우스에겐 동로마제국을, 동생인 호노리우스에겐 서로마제국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호노리우스는 통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밀라노로 자리를 옮겼다. 로마의 정치는 사실상 스틸리코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이후 13년간 스틸리코는 로마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됐다. 테오도시우스의 아들과 손자들이 미성년이었던 시기를 두고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에 가장 격심한 상처를 입힌 때”라고 혹평했다. 몽테스키외도 “로마제국이 와해되던 시기”라는 인식을 보였다. 황실뿐 아니라 로마제국의 국경을 지키는 군인도, 로마제국의 국경을 뚫고 들어오는 외적도 모두 게르만족이었다. 제국은 각지를 침입해온 게르만족과 싸웠지만 점점 제국 수비를 게르만족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특히 로마제국 말기를 장식하는 알라리크의 침입과 알라리크에 맞선 로마 장군 스틸리코 모두 게르만인이었다. 이들 두고 20세기 초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지낸 존 베리는 “제국의 게르만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았다.
스틸리코의 권력이 강해진 것은 혁혁한 전과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특히 서고트족의 알라리크 침입을 두 차례나 물리치며 로마의 목숨을 구했다. 전쟁 와중에 스틸리코는 398년 딸 마리아를 호노리우스 황제와 결혼시켰다. 하지만 스틸리코의 딸인 황후 마리아가 죽자 스틸리코의 영향력도 약해졌다. 스틸리코의 정적들은 그가 자신의 아들을 동로마 황제 자리에 앉힐 준비를 하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스틸리코는 호노리우스 황제가 있는 라벤나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의 한 교회에서 정적 올림피우스가 보낸 군대에 잡혀 처형됐다. 스틸리코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유케리우스는 로마로 도망가 목숨을 부지하다가 끝내 처형됐다.
로마제국 쇠락의 역사에는 로마의 성장과 유지의 비결이었던 개방성과 포용성이 사라져갔다는 점을 게르만족 출신 용병 실력자들의 삶이 보여주고 있다. 조직을 살리는 것도 사람이고, 조직을 망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다. 이 같은 ‘용인의 법칙’은 대제국의 역사에서도 그대로 관철됐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② 이민족에 대한 방어를 게르만족에 맡겼다가 멸망한 로마의 사례를 경제학의 주인-대리인 관계로 설명할 수 있을까.
③ 다문화가족 비중도 낮고 그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도 존재하는 대한민국이 다양성과 포용성을 키워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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