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대세’ 박민지(23)가 ‘잠정구’ 한마디를 깜빡했다가 프로 무대에선 보기 드문 ‘퀸튜플 보기(+5)’를 적어냈다. 13일 경기 포천 대유몽베르CC(파72·6551야드)에서 열린 KLPGA투어 대유위니아·MBN 여자오픈 1라운드 6번홀(파5)에서다. 그는 이 홀에서만 10타를 쏟아내 최하위로 밀려났다.
참사는 6번홀에서 벌어졌다. 티샷이 오른쪽 러프에 떨어졌지만 파를 잡기엔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민지가 당겨 친 두 번째 샷이 숲속으로 사라지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아웃오브바운즈(OB)인 줄 알았던 박민지는 ‘프로비저널(provisional) 볼’, 이른바 잠정구를 쳤다.
이때 동반자에게 잠정구를 친다고 알리지 않은 게 문제였다. 골프 규칙(18.3b)은 “플레이어는 반드시 ‘프로비저널 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잠정적으로 볼을 플레이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고 규정한다. 박민지는 이를 깜빡했다.
벌타는 박민지가 그린 옆 나무 아래에 숨어 있던 자신의 원래 공을 찾아 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동반자인 오지현(25)과 박현경(21)은 박민지의 잠정구 플레이 의사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공은 유효하지 않았다. 잠정구가 박민지의 ‘인 플레이 공’이었고 원구는 이미 ‘남의 공’이 된 상태였다.
자신의 것이 아닌 공을 친 대가로 그는 2벌타(오구 플레이)를 받았다. 여기에다 인 플레이 상황이던 공을 집어들었다. 그가 잠정구라고 믿고 집어든 공은 당시 상황에선 더 이상 잠정구가 아니었다. 이 행동으로 또 1벌타를 받았다. ‘잠정구’를 외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친 원래 공도 OB 처리됐다. 결국 이에 대한 1벌타도 받았다.
자신의 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박민지는 동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경기위원을 불렀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KLPGA 관계자는 “프로비저널 볼 선언이 없었기 때문에 앞서 친 잠정구가 인 플레이 볼이 됐고 원래 공은 분실된 볼로 취급된다”고 설명했다.
말 한마디를 깜빡한 대가는 혹독했다. 결국 박민지는 8타 만에 그린에 공을 올린 뒤 2퍼트를 했고 10타 만에 가까스로 악몽의 홀을 탈출했다. 박민지는 2019년, 2020년에 이어 이 대회 3연패를 노렸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당장 커트 통과가 급해졌다. 올 시즌 6승을 포함해 상금, 대상, 평균타수 1위를 달리고 있는 박민지는 경기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5오버파가 퀸튜플 보기인 것을 12년 만에 처음 알았다”며 “오늘을 교훈 삼아 앞으로 평생 프로비저널 볼을 잘 말하고 다니겠다”고 밝혔다.
지수진은 “정규 투어가 처음이라 핀 위치도 어려웠고 적응하기 힘들었다”며 “오늘은 아이언 샷이 잘돼 파를 넘어 버디 기회가 많이 찾아왔다. 2라운드도 1라운드처럼 플레이하겠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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