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못사게 한 집, 지금 6억 올라…매일 다툰다" 호소

입력 2021-08-15 11:00   수정 2021-08-15 15:04

결혼 6년차를 맞은 한모 씨(37)와 강모 씨(34·여) 부부는 최근 들어 자주 다툰다. 갈등의 이유는 ‘집’이다. 4년 전인 2017년 아내가 아파트를 사자고 했지만 남편이 “집값 조정이 우려된다”며 전세를 고집했다. 아내 강 씨는 “그때 눈여겨봤던 집이 4년 새 6억원 넘게 올랐다”며 “전셋집 집주인은 올해 말 집을 비워달라고 하는데 매매는 커녕 전세값도 많이 올라 이사갈 곳을 구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과거 매매를 반대하던 남편이 원망스럽다”며 토로했다.

‘부동산 블루(우울증)’가 한국 사회에 번지고 있다. 집이 있건 없건 마찬가지다. 집이 없는 사람은 주거 불안에 시달리고 치솟는 집값이 좌절 중이다. 집이 있는 사람은 죄인 취급하는 규제와 '세금 폭탄'에 분노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 문제가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을 유발하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재인 정부가 25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에서 이득을 본 참여자는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금 걷어간 정부만 돈 벌었다"는 웃지못할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방에 집을 산 죄로 ‘벼락거지’"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사회 곳곳에선 부동산과 관련한 우울감·불안감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방에서 회사를 다니는 윤정민 씨(33·가명)는 “지방근무를 후회한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지방으로 이전을 한 공기업에 3년 전 취업해 직장 인근에 집을 샀다. 비슷한 시기 서울의 중소기업에 들어간 친구도 외곽지역에서 매매를 했다. 당시 친구는 윤씨의 직장이 연봉이 높다며 부러워했지만 3년 만에 상황이 반전됐다.

서울에서 거주하는 친구의 집값은 그새 4억원 넘게 올랐다. 하지만 윤씨의 집은 2000만~3000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윤씨는 “열심히 근로 소득을 모아도 앞으로 친구의 자산 증식 속도를 절대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지방에 집을 산 죄로 ‘벼락거지’가 됐다. 어느 집에 집을 샀느냐에 따라 이렇게 격차가 벌어질 수 있느냐”고 우울해 했다.


그나마 윤 씨의 상황은 무주택자 보다는 나은 처지다. 미처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한 무주택자들은 치솟는 집값과 대출 규제에 좌절하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6억635만원에서 10억2500만원으로 69% 급등했다.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 등을 막아버려 현금 부자만 집을 살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직장인 이모 씨(36)는 "최근 정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까지 강화하면서 은행에 가보니 40%에 불과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만큼 대출이 나오지도 않더라“며 ”지금은 자금이 없는 자들은 어떤 방법을 이용해도 주거할 집을 마련하기도 힘들다"고 호소했다.

정부는 신혼부부와 직장 초년생을 위한 특별공급 등 청약기회 확대 등 20~30대의 내 집 마련을 돕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혜택을 볼 수 있는 자들은 많지 않다. 정부 지원을 받는 소득기준 때문에 맞벌이 부부는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별공급의 소득 기준(2021년 민영주택 맞벌이 기준 세전 월 889만원)이 있어, 대기업 맞벌이 직장인의 상당수가 해당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치솟는 전세금과 '매물 잠김'도 무주택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도입 이후 좀처럼 전셋값은 잡히지 않는다. 시장에선 전셋집을 내놓은 사람보다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추세다.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7월 174.3으로 올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7월(174.6) 수치와 유사하다. 4000여개 중개업소를 통해 파악하는 전세수급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시장에 공급자가 많고, 200에 가까울수록 수요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 한 채 가진 게 잘못이냐"
유주택자도 ‘부동산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매년 세금은 뛰는 데다 이를 하소연 하기라도 하면 주변의 질타가 쏟아진다. 서울 마포의 '래미안웰스트림' 아파트에서 입주 때부터 살고 있는 홍모 씨(42)는 “8년 전 분양이 안돼 할인분양을 하던 이 아파트를 살 당시 주변에선 ‘집 값이 내릴 수도 있는데 그걸 왜 사냐’며 어리석은 사람으로 치부하더니 이젠 시기 어린 시선을 보낸다”고 하소연했다. 가끔 보유세가 높다며 걱정이라도 하면 “집값이 많이 올라 큰 이익을 봤으니 세금 더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홍씨는 “미분양 상황에서 가격 상승은 기대도 하지 않고 주거할 집은 하나 가지고 있자는 생각에 산 집인데 마치 투기꾼 취급을 받고 있다”며 “집값이 올랐다 해도 팔지 않는 이상 돌아오는 것은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다주택자들은 더욱 가시방석이다. '세금 폭탄'에 집을 갖고 있기도, 팔기도 어렵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84㎡와 강남구 대치동 은마 전용 84㎡ 등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한 다주택자의 경우 지난해만해도 종부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로 총 3074만원을 냈는데, 올해는 1년 만에 2.4배 급등한 7482만원을 낸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30평대를 한 채씩 가진 사람은 2018년 882만원이던 보유세가 내년이면 7000만원 이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집을 팔자니 양도차익의 약 58%(양도세 52%+지방세 5.2%)가 세금이다.

서울 강동구의 T공인 관계자는 “다주택자들이 집을 정리하려고 해도 세금이 60~70%에 달하는데 누가 집을 팔려고 하겠느냐”며 “특히 나이드신 분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끼고 돈을 모아 주택을 사며 재산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세금이 징벌용으로 활용된다는 인식이 있어 반감이 크다”고 전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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