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이 삼성전자 위기론을 제기하고 주가가 폭락했죠."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곤두박질 치는 가운데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삼성전자 주가 하락은 한 시장조사 기관의 전망에서 촉발됐다. 대만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PC 제조업체의 높은 재고 수준, PC 수요의 둔화 등을 이유로 올해 4분기 PC용 D램 가격이 최대 5%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도 '반도체의 겨울이 온다'는 리포트를 통해 "(반도체) 사이클 후반기에 진입해 얻는 보상보다 위험이 크다"며 "D램 가격이 여전히 상승세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으면서 상승률은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 목표주가도 9만8000원에서 8만9000원으로 낮췄다.
SK하이닉스는 간신히 7거래일만의 반등에 성공했지만 4일 종가(12만1000원) 대비 16.1% 하락했다. SK하이닉스는 13일 전날보다 1% 오른 10만1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다만 이날 장중 9만8900원까지 하락하며 네이버에 시가총액 2위 자리를 잠시 내주기도했다.
1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증시에서는 대표 반도체주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0.95% 오른 70.9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마이크론의 주가가 소폭 오르긴했지만 이미 앞선 5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16.73%나 급락한 상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모건스탠리와 삼성전자의 악연이 재연됐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2017년 11월 27일 모건스탠리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요지의 리포트와 함께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낮췄다. 삼성전자 주가는 하루 만에 5% 하락했다. 사라진 시가총액만 18조원에 달했다.
모건스탠리 리포트는 삼성전자 뿐 아니라 삼성그룹주,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의 주가까지 끌어내렸다. 당시 SK하이닉스 주가도 2.35% 떨어지며 시총 1조4500억원이 빠졌다. LG디스플레이 -1.44%, 삼성SDI -4.3% 등 주요 IT 종목 주가도 동반 하락했다.
모건스탠리 쇼크에 골드만삭스가 구원투수로 나선 모양새도 비슷하다. 2017년 당시 골드만삭스는 모건스탠리의 부정적 보고서로 주가가 급락한 삼성전자에 대해 "메모리 사이클에 대한 너무 큰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며 "우리의 낙관적 논지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모건스탠리와 달리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10만7000원, 17만7000원으로 유지했다. 골드만삭스는 반도체 업황 둔화 우려가 있으나, 견조한 서버 수요가 있어 목표주가를 내릴 단계가 아니라고 분석했다. 또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의 D램 재고는 1주일 이하로 역사적 저점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과거 심각한 메모리 가격 조정기 때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PC용 D램 가격의 하락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 회사는 주로 기업용 서버와 모바일에 쓰일 고사양 D램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PC용 D램은 기업서버용과 모바일용에 비해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보유 재고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공급이 타이트하다”며 "D램 가격에 대해 100% 확신을 갖고 전망할 수는 없지만 현재 시장 우려는 지나친 면이 있다"고 말했다.
2017년 모건스탠리 비관적인 전망에도 삼성전자는 역대 최대 실적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2018년에 다시 깨졌다. 주인공은 메모리였다. 지금까지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50조 원을 돌파한 것은 2017년(53조 6450억 원)과 2018년(58조 8867억 원) 두 해 뿐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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