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중은행의 고위 임원은 금융감독원이 지난 13일 은행 여신담당 임원을 불러 ‘개인 신용대출 최고 한도를 연소득 수준으로 축소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해 여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이후 정부는 수차례의 공식·비공식적 가계부채 관리 대책을 내놨다. 그럼에도 대출 수요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게 이 임원의 설명이다. 정부는 자산시장의 과열을 막겠다는 취지로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했다. 이례적인 초강력 창구지도도 이어졌다.
금융당국의 잇따른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 증가세는 둔화하지 않고 있다. 7월 말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695조3082억원으로 1년 전보다 60조4029억원(9.5%) 증가했다. 강화된 DSR 대책이 시행된 7월에도 6조2009억원 늘어났다. ‘약이 무효’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당국이 또다시 신용대출 억제책을 내놓은 것은 지난해 말 고신용자의 신용대출을 죄니 일반인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심각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1년 전만 해도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연소득의 5배까지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2배까지만 가능하다. 은행 마이너스통장 대출 한도도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축소됐다.
2030들이 ‘영끌’과 ‘빚투’를 통해 부동산 구매, 코인 투자에 나섰다는 게 금감원의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그 이후 금리 상승세가 본격화되면 이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은행들에 ‘대출 억제’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치가 현실화하면 연봉에 비해 비교적 대출 한도가 컸던 전문직과 공무원 등의 대출 한도는 더욱 줄게 된다. 소득이 적은 사람의 ‘소액 신용대출’도 완전히 막힐 수 있다. 은행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 저축은행 카드사 등으로 대출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 실수요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더 많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향후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는다면 소득 이하로 대출 한도를 제한하는 조치가 ‘창구지도’와 ‘정식 대책’의 순서로 시행될 전망이다. 기존 대출에는 소급적용하지 않고, 신규 대출에만 적용하는 안이 유력하다. 은행들은 미리 대출을 받아놓으려는 ‘가수요’가 몰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에서는 빚을 내는 것도 큰 자산이다. 대출 수요를 억제하기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법은 부동산 시장 안정과 기준금리 인상이다. 대출 규제를 위한 ‘땜질식 처방’ 때문에 금융소비자들의 스트레스만 커지고 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