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던 무장세력 탈레반의 본색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상이 공개됐다.
19일(현지시간) 뉴질랜드헤럴드(NZ Herald) 등은 올초 미국 매체 바이스 뉴스의 힌드 하산 기자가 탈레반 대원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담긴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재조명했다. 당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도시들을 하나씩 점령하던 상황이었다.
공개된 영상에서 하산 기자는 "탈레반 통치 아래 아프가니스탄 여성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느냐"고 질문했고, 탈레반 대원들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서"라고 답했다.
하산 기자는 이어 "아프간 국민들이 여성 정치인에게 투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냐"고 물었고, 진지한 표정이었던 탈레반 대원들은 바로 실소를 터트렸다.
인터뷰에 응한 지휘관 하탑은 고개를 푹 숙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웃음은 숨기지 못했다. 그는 이내 하산 기자에게 촬영 중단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날 웃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인터뷰 전 하산 기자에게 아프간 전통 부르카를 착용하도록 요청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탈레반이 '여성 인권' 관련 질문에 웃음을 터트리는 영상은 트위터 등을 통해 재확산됐고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상태다.
20년 만에 아프간 전체를 재장악한 이른바 '탈레반 2.0'은 여성의 인권이 보호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왔지만 이같은 영상이 공개되며 과거 통치 때와는 다를 것이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1996~2001년) 때 샤리아법을 앞세워 사회를 엄격히 통제하고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지 않았다.
특히 여성은 남성 동행자가 없이는 외출할 수 없었고,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 전통복)로 온 몸을 가려야 했다. 또 불륜을 저지르면 돌로 쳐 죽게 하는 등 공개처형 됐고 남편과 사별한 여성이나 미혼 여성, 13세 이상 소녀들을 탈레반 조직원과 강제로 결혼시켰다.
앞서 카타르 도하 소재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 수하일 샤힌은 샤리아 법에 따라 여성들이 자유를 갖고, 부르카를 의무화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여성은 반드시 히잡(머리와 목을 가리는 두건)을 착용해야 하지만, 부르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며 "이는 우리의 원칙이 아닌 이슬람교의 율법으로 이 모든 것은 여성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CNN은 "불과 며칠 전에 비해 훨씬 적은 수의 여성이 거리로 나서고 있고, 그들은 전보다 더 보수적으로 옷을 입고 있다. 여성은 얼굴은 종종 니카브(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 전통 복장)로 덮여 있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의 말과 행동은 달랐다. 카불 시내 미용실, 백화점의 여성 모델이 등장한 광고판은 검게 칠해졌다. 카불에서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총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탈레반이 부르카로 몸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식료품을 사러 나온 여성을 위협해 다시 집으로 들여보내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