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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비롯해 전국 6대 도시 지하철이 장기화된 적자와 누적된 부채로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다. ‘안전 비용’ 확보도 버거울 정도여서 지금 상황으로는 계속 유지가 어렵다. 적자 운영과 눈덩이 같은 빚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시민의 발’이 대중교통시스템으로 계속 버티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서울시, 서울교통공사 모두 ‘적자 폭탄 돌리기’를 일삼고 있다. ‘내 임기 중에 문제가 불거지지 않으면 그만’(NIMT: not in my term)이다. 지하철에 대한 해묵은 구조조정이 그렇게 다시 부각됐고, 이에 지하철 노조는 파업 카드를 들고 맞서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시 산하 지방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의 누적 적자와 빚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사실이다. 이 공사의 채권 발행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섰다(2021년 6월 말 기준). 코로나 쇼크로 승객이 줄었기 때문이라지만, 반년 새 공사의 빚은 42%나 급증했다. 단기 빚까지 합치면 공사가 발행한 채권은 2조7580억원에 달한다. 2021년 한 해에만 부족한 운영 자금이 1조6000억원에 달한다는 연초 전망치가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 무임승차 논란이 불거졌다. 65세 이상의 무임승차를 지속해야 하나, 아니면 획기적으로 재조정해야 하나.
노인이 지하철을 이용할 때 내야 할 요금을 비용으로 보고 계산한다면 공적 지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서울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약 83만 명의 노인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 긍정적 효과가 상당히 크다. 무엇보다 고령층의 경제활동이 증가해 전체 경제에 도움을 준다. 이동과 활동을 장려하게 되면서 고령자들이 흔히 겪기 쉬운 우울증을 감소시키고, 자가용 승용차 등을 이용할 때보다 교통사고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연간 365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오히려 문제는 노인들의 무임승차 부담을 지하철 공사와 해당 지방자치단체(시)에 모두 떠넘기는 재정 구조다. 1984년부터 시행된 지하철 무임승차 정책은 노인복지법에 따른 국가 정책 차원이다. 그렇다면 그 부담도 국비에서 나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지방 공사에 맡기고 가뜩이나 재정 형편이 열악한 지자체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 소모적 논쟁이 계속되는 것이다. 정부가 전적으로 이 부담을 떠안는 것이 어렵다면 서울시와 적정 비율로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노인 인구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지금 손을 대지 않으면 무임승차 제도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서울에서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6%에 달하는데, 2047년에는 이 비율이 37%로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서울교통공사의 무임승차 손실은 최소 9조원, 최대 12조원으로 늘어난다. 공사가 부도날 수 있다. 서울시가 이 비용을 다 메꿔줘야 한다면 시는 다른 행정을 펼 수 없을 것이다. 지하철 구조조정도 서울교통공사가 다 책임지라는 것처럼 되면서 공사 임직원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일시에 모든 노인에게 요금을 다 내게 하는 게 부담이라면 대안이 있다. 할인 요금 적용, 매달 10~20장 정도로 이용권 지급, 소득과 재산을 따져 일정 수준 이하의 저소득층에만 무임 승차권 지급 등이 현실적 대안이 된다.
무임승차에 대한 부담을 중앙정부로 미루는 것도 설득력이 약하다. 대중교통에 대한 운영 주체는 어디까지나 지자체다. 법에 그렇게 돼 있는 만큼 비용도 지자체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 시내버스가 그렇듯이, 지하철의 건설부터 운영에 관한 권한이 다 서울시에 있으니 그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게 지방자치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요금인상권을 행사해 적자를 줄이거나 심야나 주말에는 요금을 더 받는 차등요금제 등 유연한 행정으로 지하철 부실을 줄일 수 있다. 인기 있고 폼 나는 정책은 다 행사하면서 조금이라도 반대가 예상되는 결정은 기피하니 책임 행정이 못 된다. 무임승차 연령을 올리기만 해도 적자는 크게 줄어들 수 있는데도 그런 결정은 피한 채 중앙정부에 모든 책임을 미루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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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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