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넘긴 줄 알고…" '그알'이 22년 전 살인범 잡았다

입력 2021-08-20 17:48   수정 2021-08-20 19:10


제주의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 중 하나였던 ‘변호사 피살사건’의 살인 교사 피의자가 22년 만에 붙잡혔다. 그가 붙잡힌 이유는 한 방송에서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제주경찰청은 살인 교사 혐의로 김모(55)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0일 밝혔다.

김씨는 1999년 11월 5일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북쪽 삼거리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이승용(당시 44세) 변호사 살해를 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변호사 피살 사건은 오랜 시간 제주의 대표적인 미제사건이다. 그러나 김씨가 지난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살인을 교사했다고 자백하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제주지역 조직폭력배인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 김씨는 지난해 6월 27일 방송된 해당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1999년 10월 당시 조직 두목인 백모 씨로부터 범행 지시를 받았고, 동갑내기 손모 씨를 통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당시 진술에 따르면 두목은 다리를 찔러 겁을 주라고 했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 직접 행동에 나선 손씨가 피해자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살해했다는 것.

방송이후 경찰은 재수사에 착수했고 지난 4월 김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 요청을 했다.

김씨는 캄보디아에 체류하다가 지난 6월 23일 불법체류 혐의로 현지에서 검거됐고 지난 5일 추방이 결정돼 18일 국내로 강제 송환돼 제주로 압송됐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방송에 출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더해 그는 "당시 용의선상에 이 변호사 가족이 오르기도 한 만큼, 방송 출연을 통해 피해자 유족의 억울함을 풀어주면서 유족으로부터 사례비를 받고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살인과 살인교사 등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2014년 11월 5일 만료됐지만 김씨의 과거 출입국 기록을 분석한 결과 공소시효 만료 전에 수차례 해외를 오간 것으로 파악됐다.

형사소송법 제253조에 따르면 범인이 형사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국외로 도피한 경우 그 기간 공소시효가 해외 체류 기관 만큼 정지된다. 김씨가 공소시효 만료 전 해외로 출국한 기간을 모두 합치면 8개월 이상이 된다. 경찰은 이 조항을 근거로 공소시효 만료 전 해외에 있던 김씨에 대해 형사상 처벌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 국외 도피했다는 증거 역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에 대한 형사 처벌을 떠나 장기미제 사건인 이변호사 살인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오는 21일 열릴 예정이다.

피해자인 제주 출신인 이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24회에 합격해 검찰에 입문했다.서울지검 등에서 검사로 재직하다 1992년 제주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지만 제주에 내려온 지 7년 만에 살해당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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