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사태'와 쌍둥이처럼 닮은 '머지 사태' [이호기의 금융형통]

입력 2021-08-22 07:17   수정 2021-08-22 07:20

'머지포인트 환불 중단 사태'가 결국 국회까지 진출했습니다.

지난 20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는 27일 예정된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실시계획을 승인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곧 '머지 사태'를 막지 못한 금융당국에 대한 성토장으로 바뀌었지요.

여야 할 것 없이 의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의 무능과 안일함을 일제히 질타했고 코로나19 확진자 접촉으로 자가격리 중인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대신해 회의장에 나온 도규상 부위원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폰지 사기'
이번 '머지 사태'는 2019년 전 금융권을 뒤흔들었던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실제 라임운용도 한국경제신문의 특종 보도로 그 전모가 밝혀지기 전까지 국내 주요 은행 및 증권사들이 앞다퉈 펀드를 떼다 팔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 '라이징 스타'였지요.

당시 라임 펀드가 단 한차례의 손실 기록도 없이 연간 6~7%에 달하는 고수익을 내고 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고액자산가들의 뭉칫돈이 몰려들었고 2019년 상반기 라임운용의 수탁 자산은 무려 6조원을 넘어섰지요.

그러나 이 같은 신화는 곧 신기루로 판명납니다. 라임 펀드가 투자한 자산은 코스닥 한계기업의 전환사채(CB) 등 초고위험 자산이었고 이에 따른 손실을 감추기 위해 '펀드 돌려막기'나 자전거래 등 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았지요.

즉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기 위해 신규 투자자를 끝없이 유치해야 하는 '폰지 사기'와 다를 게 없었던 겁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펀드를 환매하려는 투자자들이 일제히 몰려들어 '펀드 런'이 발생했고 라임운용은 결국 환매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끝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투자자들만 거액의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지요.
실상 드러나자마자 발생한 '펀드 런'과 '머지 런'
머지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머지포인트는 각 매장별로 나뉘어 있는 적립 쿠폰이나 포인트를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웅대한 포부를 갖고 2017년 10월 출시돼 지속적으로 가맹점을 늘려왔지요.

여기까지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2020년 3월 모든 업종에서 '20% 할인'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고 '선지급 포인트'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커다란 호응과 함께 위기의 씨앗도 뿌려집니다.

단 1년만에 가입자가 100만명을 넘어섰고, 판매된 포인트만 1000억원에 달했지만 이 과정에서 전자금융업자 등록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지요.

현행법상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 등처럼 여러 업종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발행하려면 먼저 금융위원회에 전자금융업자로 등록해야 하는데 머지 측은 이 같은 점을 깡그리 무시한 채 1년 넘게 사업을 영위해온 셈입니다.

당황한 머지 측이 갑자기 제휴 업종을 음식점업 단 하나로 축소했고 이에 불안을 느낀 포인트 구매자들이 일시에 환불을 요청하면서 '머지 런' 사태가 벌어졌지요.

물론 자본금 30억원짜리 회사가 1000억원 넘게 발행된 포인트를 한번에 돌려줄 능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즉 머지가 내세웠던 '전 업종 20% 할인' 혜택은 결국 나보다 늦게 머지포인트를 구매한 가입자들의 희생으로 유지돼 온 셈이죠.
금융당국의 '뒷북 대응'과 '남탓하기'도 닮은꼴
금융당국의 '뒷북 대응'과 '남 탓하기'도 두 사태 모두 다를 게 없었습니다.

금융당국은 '라임 사태'가 벌어지자 박근혜 정부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로 감독 권한이 없었다는 핑계를 댔으며 이번 '머지 사태'에서도 전자금융업자 미등록 상태다 보니 감독 범위에서 아예 벗어나 있었다고 해명했지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한국 금융시장에서 '제2, 제3의 라임 또는 머지'를 막는 일 역시 앞으로도 불가능한 것일까요.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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