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처벌이 강화됐지만 국내 사고사망자는 2019년 855명에서 지난해 882명으로 오히려 3.1%(27명) 늘었다. 국가별로 비교해도 많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사고사망만인율(상시근로자 1만 명당 사고사망자)은 2019년 기준 0.46으로, 영국(0.03) 독일(0.14) 미국(0.37) 등에 비해 최대 열 배 이상 높다.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경영자에게 직접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델인 영국 기업과실치사법 역시 산재 감소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게 현지의 평가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아무리 준법 의지가 큰 기업이라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규정이 수두룩하다”며 “이대로 시행될 경우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선진국들은 ‘처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둔 산업안전 정책을 펼치고 있다. 안전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은 산업안전감독관의 전문 역량 확보에 힘을 기울인다. 감독관 채용 후 2년간 교육·훈련을 통해 사고 원인 조사부터 체계적으로 실시한다. 다양한 안전기술 지침과 가이드를 개발·보급하는 활동도 병행한다.
사후 처벌 중심의 한국 역시 산업안전 정책 기조를 사전예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경제계 목소리다. 우선 정부의 산재 예방 조직 전문성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통해 사고 원인부터 명확히 규명하고, 실효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종별 특성에 맞는 지침을 개발·보급하고, 사업장을 지도·지원하는 행정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있다.
한 대기업 안전담당 임원은 “산재를 줄여야 한다는 데 공감해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며 “정부 역시 위험·노후시설 개선 때 소요비용에 대한 세제 혜택 등 지원책부터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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