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금리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고 수준으로 빠르게 치솟고 있다.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고신용자라면 당연하게 여겨졌던 연 2%대 신용대출 금리도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3년 만의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앞두고 시장금리가 급등한 데다 가계대출을 억제하라는 정부 지침에 따라 은행들이 잇달아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18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에 대해 더 강력한 관리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 앞으로 대출금리 상승 속도는 더 가팔라질 가능성이 크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출신인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25일 “일정 수준의 금리 상승은 긍정적”이라며 “모든 정책 수단을 활용해 추가 가계부채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금융계에 따르면 이날 기준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대표 비대면 신용대출 최저금리(내부신용등급 1등급·6개월 변동금리 기준)는 연 3.01~3.05%였다. 지난 7월 말 연 2.91~2.96%에 비해 불과 약 3주 만에 0.1%포인트가량 올랐다. 주요 은행에서 연 2%대 비대면 신용대출이 사라진 셈이다.
지난해 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 위기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0.5%까지 낮춘 여파였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국내 모든 은행이 신규 취급한 신용대출 금리는 연 2.86%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주요 은행에서는 지난해 7~9월 고신용자 신용대출 최저금리가 연 1.7%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바닥을 쳤던 시장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이를 기준으로 삼는 은행 신용대출 변동금리도 오르기 시작했다. 정부도 이때부터 역대 최대 수준으로 불어난 신용대출에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본격적으로 가계대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따라 은행들도 신용대출 한도를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하고 우대금리 혜택을 확 깎는 방식으로 문턱을 높였다.
이런 추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연내 기준금리 인상 우려가 짙어지면서 최근 시장금리 상승세는 더 가팔라졌다. 신용대출 기준금리로 가장 많이 쓰이는 은행채 6개월물 금리는 24일 기준 연 1.027%로 불과 이틀 새 0.046%포인트, 7월 말에 비하면 0.102%포인트 뛰었다. 이 금리가 1%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이다.
하반기에는 대출 문턱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가계대출 규제도 강화 일변도다. 24일부터 주택대출 신규 취급을 한시 중단한 농협은행은 신용대출에 대해서도 최대 한도를 기존 2억원에서 ‘연소득 100% 이내, 최대 1억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금융당국이 최근 은행에 통상 연소득의 1.2~2배인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의 100%’까지로 줄이라고 한 데 따른 조치다.
농협은행을 시작으로 다른 은행도 조만간 신용대출 한도 축소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주요 은행에 신용대출 한도 축소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오는 27일까지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상품별로 어떻게, 언제부터 이행할 것인지, 전산 등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정 수준의 금리상승은 과도한 신용팽창을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해 금융불균형을 해소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며 “소폭의 금리상승이 우리 거시경제의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고 후보자는 금융위 재직 시절 성과에 대해서도 가계부채 관련 정책 대응 노력을 첫손에 꼽았다. 그는 “부동산 시장 불안정에 대응하기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2005년) 등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를 위한 기본 틀을 마련했던 점을 보람있게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빈난새/김대훈/이호기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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