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기금 고갈은 ‘예고된 참사’다. 문재인 정부가 포용적 성장 운운하며 2019년 갑자기 실업급여 지급액과 기간을 늘리고, 기금 목적에 맞지도 않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 같은 복지사업까지 떠맡길 때부터 예상됐던 결과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때만 해도 10조원에 달했던 기금 적립금이 4년 만에 마이너스(-3조2000억원)가 됐고, 정부재정(공적자금관리기금)으로부터 지원받아 기금을 유지하는 처지가 됐다.
따라서 정부가 보험료율 인상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려면 기금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지출 구조조정이나 부정급여 방지 등에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1995년 기금 설립 후 20년 넘는 동안 세 차례밖에 인상하지 않았던 보험료율을 현 정부 들어 두 번씩이나 올리려는 상황 아닌가.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재정상황이 어렵게 됐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은 정부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이미 바닥났거나, 바닥을 눈앞에 둔 다른 사회보장기금 대책도 내놔야 한다. 건강보험기금은 4년 연속 보험료율을 올리고도 3년 내리 적자다. 현 정부 초 20조원에 달했던 적립금은 내년 고갈을 앞두고 있다. 그 원인이 보장성을 급히 끌어올린 ‘문재인 케어’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민연금도 현 정부 들어 한 번도 수급요건 등을 손질하지 않아 고갈 시기가 3년 정도 빨라졌고, 공무원·군인연금은 적자 폭이 매년 커지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이나 부정수급자 퇴출, 보장수준 적정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없이 퍼주기와 생색내기에 여념이 없다. 실업급여만 해도 이미 홀로서기가 불가능한데도 ‘전 국민 고용보험’을 외치며 지급대상 범위만 넓히고 있다. 생색(보장성 강화)은 정부가 내고 청구서(보험료율 인상)는 국민이 떠안는 식으로는 어떤 복지제도도 유지 불가능하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정안정화 방안을 내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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