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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백신접종 예약 시스템 먹통을 겪어본 이들이라면, 그 울화를 안다. 인내력 테스트의 ‘끝판왕’이라고 해야 할까. 종착역에 다 왔다 싶으면 다시 초기화면으로 튕겨 돌아가기를 반복할 때 누구든 치밀어 오르는 격류를 맞이하게 된다. 어떤 이는 “작년 EBS 온라인 수업 시스템 먹통 때 학생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한 게 유일한 소득”이라고도 했다.
두 먹통 사태는 닮았다. 선의로 포장됐으나 어설픈 규제의 해악을 스스로 드러냈다는 게 그렇다. 백신접종이 급했던 이웃, 친구와 선생님을 온라인으로나마 만나려던 학생 등 애먼 피해자들이 양산됐다. 책임지는 이 없이 기술 대기업들이 나서 무보수로 사태를 수습해준 것도 닮은꼴이다. 왜 이런 일이 자꾸 터질까.
실접속자 수가 30만 명일지 1000만 명일지 정확하게 예측해 내는 건 실력이다. 그 변수를 SW 설계에 반영할 수 있느냐, 문제가 생겼을 때 즉각 대응이 가능하냐 등은 한 단계 더 나아간 또 다른 실력이다. 한 정보기술(IT) 전문가는 “단독 주택을 지어본 경험과 초고층 빌딩이 포함된 부동산 개발을 해본 차이”라고 비유했다.
급한 불이 꺼진 뒤 흘러나오는 뒷얘기는 더 심각하다. 사태 해결 과정에도 중소기업 몫을 끼워 넣었다는 의혹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급박하게 소방수 역할을 요청해와 들여다봤더니 이미 한 대기업이 불을 끈 상태여서 할 게 없었다. 그런데 몇몇 중소기업 이름이 나열돼 있더라. 누군가가 부랴부랴 구색 맞추기에 신경을 쓴 듯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기승전코미디’다.
대기업의 예외적 참여 허용을 심의하는 기구의 결정도 날씨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교육부의 4세대 NEIS(교육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이 그랬다. 교육부가 “이번 사업만큼은 대기업에 의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심의 소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네 차례나 읍소했지만 좌절됐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공공 분야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건 급팽창하는 글로벌 시장 때문이다. “세계적 빅테크들과 싸우려면 노하우 축적이 절실하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중소기업 키우기는 세계적 추세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보호’를 명분으로 특정 기업집단을 통째 배제하는 곳은 없다. 진짜 경쟁을 해야 중소기업이 강하게 큰다는 이유에서다.
중소기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중소기업이 감당할 일감을 더 많이 주는 게 가야 할 방향이다. 실력차가 뚜렷하다면, 가산점을 줘 경쟁하게 하면 될 일이다. 미국, 일본, 유럽이 그렇게 중소기업을 키운다. 골프로 치면 일종의 ‘핸디캡’을 적용하는 식이다. 기준은 기업 크기가 아닌 국민편의다. 진짜 경쟁, 진짜 공정으로만 누릴 수 있는 과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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