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2024년까지 10만가구가 넘는 사전청약 물량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주택 청약 가점이 낮아 청약 당첨 확률이 거의 없는 젊은층들은 오히려 ‘패닉바잉(공황구매)’으로 돌아서고 있다. 정부가 청년특별대책까지 내놓으면서 금융지원을 통해 내 집 마련을 돕겠다는 방안을 내놨지만, 이 또한 2030세대들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으로 평가된다.
물량이 대거 쏟아지지만 일반분양 물량은 많지 않다. 공공 사전청약의 경우 일반분양 물량이 15%, 특별분양 85%다. 민간 사전청약은 일반분양 물량이 늘어 이 비율이 각각 42%, 58%다. 다자녀, 노부모 부양, 신혼부부, 생애최초 등의 조건을 충족하는 2030세대는 공공 사전청약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며, 특공 조건엔 부합하지 않지만 가점이 높은 중장년층은 일반 청약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청약 가점이 낮은 20~40대 실수요자들의 회의감이 커지고 있다. 특공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가점도 쌓지 못한 미혼 무주택자들의 경우 사전청약을 포기하고 패닉바잉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서울 구로구의 한 구축 아파트를 산 30대 박 모씨는 “내년 초 결혼을 해야 하는데 집값이 계속 폭등하는 게 눈에 보이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을 해서 집을 살 수 밖에 없었다”며 “3기 신도시 청약도 고민해봤지만 특공 요건은 안되고 가점도 20점대에 불과해 일반분양 역시 당첨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한 뒤엔 이미 집값이 더 폭등해있을 것 같아 급히 매수했다”고 말했다.
일부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도 3기 신도시 청약에서 소외돼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특별공급을 신청하려면 소득 기준(2021년 민영주택 맞벌이 기준 세전 월 889만원)을 맞춰야 해 급여가 이보다 높으면 아예 지원 자격이 없다. 대기업에서 맞벌이를 하는 신혼부부 한모 씨(33)는 “돈이 없어서 맞벌이를 하는 것인데 소득 기준에 걸려 넣을 수 있는 청약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정부는 영끌해 집을 사지 마라고 하지만 대안이 없지 않느냐”며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이 본격화되면 전세 물량마저 동이 날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대출을 최대치로 일으켜 집을 살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 씨는 최근 서울 도봉구에 집을 샀다.
이미 부동산 온라인 카페 등에선 "사전 청약 물량 확대가 무주택 실수요자에겐 '희망 고문'이 될 것"이란 의견이 속출하는 중이다. 자신을 40대 직장인이라 밝힌 한 네티즌은 “이번 주택공급 확대안은 결국 본청약도 아닌 사전청약 단계인데 예전의 보금자리주택이나 3기 신도시 토지수용 과정을 지켜보면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며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무주택자들이 집을 매매하지 못하고 전·월세를 전전해야 하는데 임대 매물이 없으니 거주하는 내내 불안에 시달려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에 정부가 새로 발표한 민간 아파트 사전 청약은 당첨 시 청약 통장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당첨자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다른 청약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기존 공공주택 사전 청약은 당첨되더라도 다른 아파트 청약에 도전할 수 있으나, 민간 사전청약 조건은 더 까다로운 셈이다.
한편 정부는 전날 2030 청년세대들을 위한 청년특별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주요 내용이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금융혜택이 있긴 하지만 빚을 쉽게 내주거나 소액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공급은 임대 중심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중위소득 60%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매달 20만원의 월세를 최대 12개월간 지원한다. 월세 바우처로 대책으로 가구소득 기준 중위 100%와 본인 소득 기준 중위 60% 이하를 충족하는 15만4000명이 대상이다. 무이자 월세 대출을 신설하고, 청년보증부 월세대출의 소득기준은 연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대한다.
내년에 공급되는 청년임대주택 5만4000호에는 청년 수요를 반영한 테마형 임대주택도 구성될 예정이다. 내집마련을 위해서는 무주택 청년 등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되는 공공자가주택이 예정됐다. 행복주택은 계약금 인하(10%→5%), 재청약 허용, 거주기간 연장(6년→30년) 등 제도를 개선한다. 청년우대형 청약통장의 가입기간을 2023년까지 2년 연장하고, 소득기준도 연 3000만원에서 3600만원으로 완화한다. 청년·신혼부부 대상으로는 최대 40년 고정금리로 초장기 정책모기지를 도입한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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