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자살 폭탄 테러로 어려움에 처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이번 테러를 범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응징해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한 뒤 탈출구를 찾지 못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IS는 이날 미군과 아프간을 탈출하는 민간인들이 집결하는 두 곳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 카불공항 남동쪽 애비 게이트는 미국 등이 아프간을 떠나려는 자국민과 아프간 협력자들을 공항에 들여보내기 위해 신원을 검사하는 곳이다. 애비 게이트 인근에 있는 배런호텔은 아프간 대피자들이 공항으로 가기 전에 묵는 대기소다.
IS는 이런 동선을 파악한 뒤 미군이 많은 곳으로 접근해 폭탄 조끼를 터뜨렸다. IS는 선전매체 아마크 뉴스통신을 통해 “이번 공격의 주체가 자신들”이라고 한 뒤 “모든 보안시설을 뚫고 미군에 5m 이내까지 접근해 폭발물이 장착된 조끼를 폭파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방부와 정보당국도 이번 공격이 IS의 아프간 지부인 호라산(IS-K)의 소행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 사고로 미군 13명을 포함해 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 수는 수백 명에 달했다.
이날 오전 10시께 날아든 테러 소식에 백악관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1시간30분 뒤 예정된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와의 백악관 회담을 다음날로 연기했다. 오후 3시 아프간 난민 수용 문제와 관련해 주지사들과 잡았던 면담도 취소했다. 그리고 일정에 없던 대국민 연설을 오후 5시에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사상자 속출로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을 의식해 강경한 어조로 테러 집단을 겨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선택한 방식으로 우리가 정한 시기와 장소에서 정확하게 무력으로 (테러 집단에) 대응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고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추적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달 말로 정해진 미군 철수 시한은 지키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제는 20년간의 전쟁을 끝내야 할 때”라며 “오는 31일까지 철군을 완료해 이번 전쟁을 끝내겠다는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또 “카불 내 병력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최대 조처를 하라고 지시했다”며 “추가 병력을 포함해 무엇이든 승인하겠다”고 덧붙였다. 철군 뒤에도 대피시켜야 할 미국인이 남아 있다면 미군을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탈출을 원하는 아프간인을 전원 대피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제사회도 IS의 폭탄 테러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수십 년 동안 이런 일은 없었다”며 “이번 테러는 야만적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이날 트위터에 “카불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끔찍한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카불에서 많은 사람을 가능한 한 빨리 대피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든 행정부를 공격했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번 테러는 바이든 대통령의 허술한 철수 전략을 보여준다”며 “외교적 수모이며 국가 안보의 대참사”라고 날을 세웠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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