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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은 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무면허, 신호위반 운전은 특례법을 위반한 범죄이므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울산지방법원은 보험사가 트럭의 과실을 20%로 인정한 점을 근거로 들며 “A씨의 무면허 운전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없고, 신호위반도 중과실의 ‘범죄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도 지난달 7일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하던 중 신호위반 사고를 일으킨 근로자 B씨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무리하게 횡단보도를 지나려다 정상 운행 중이던 화물차와 충돌한 사건이었다. 큰 부상을 입은 B씨는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특례법상 신호위반, 무면허 중과실로 발생한 사고라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승인을 거절했다. 하지만 법원은 B씨의 중과실을 인정하면서도 “화물차 운전자도 무단횡단을 살피며 운전할 주의 의무가 있었던 만큼 B씨의 무면허 중과실만이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신호위반이 산재보험 적용을 배제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라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법원은 근로자의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가급적 업무상 재해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음주운전 같은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무면허 등 특례법을 위반한 중과실에도 산재 보상을 인정해 주는 게 판례의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산재보험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출퇴근 사고에 지급된 산재보상금은 2019년 1300억원을 넘어섰다. 출퇴근 재해 승인 건수는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001건을 기록한 출퇴근 산재 승인 건수는 올해 최초로 1만 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1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근로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전달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단은 지난해 산재와 관련된 소송에서 21.6%의 항소율을 보였다. 10건 중 8건은 항소를 포기하고 1심 판결을 이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 노동법 전문가는 “대법원 판결이 아니더라도 1심 확정이 반복되면 전례가 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산재 승인 기준을 법원에만 맡겨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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