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대학 공멸을 원하는가

입력 2021-09-01 17:38   수정 2021-09-02 00:14

정부의 재정지원 명단에 있느냐 없느냐가 대학의 생명줄이 되고 말았다. 탈락한 대학들은 반발하고 대학 단체들은 일제히 정부의 재정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 10년 전부터 예고된 미래를 무시한 결과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정부인가, 대학인가.

대학 붕괴는 벌써 시작됐다는 게 조영태 서울대 교수의 진단이다. 조 교수는 지금 같은 대학 재적인구 ‘급감기’가 2027년 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다음 ‘숨고르기’가 잠시 오지만 2035년부터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폭락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어 2044년부터 모두가 포기하는 ‘공멸기’에 들어간다는 게 마지막 장면이다. 수도권 대학 정원을 10% 감축해 지역 대학으로 돌린다고 해도 폭풍 전야가 겨우 2년 늘어날 뿐이다. 임시방편으로는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얘기다. 이것도 2020년 18~24세 인구수와 대학 재학생의 비율이 유지되고, 수도권 대학이 2020년 정원을 100% 채운다는 가정에서 나온 보수적인 전망이다.

인구학적 경고에 다른 변수들이 가세하면 상황은 더 비관적으로 변한다. 코로나19가 온라인 비대면 교육을 오프라인과 ‘다른 상품’이거나 ‘보완재’가 아니라 ‘경쟁재’로, 나아가 ‘시장 파괴자’ 반열로 올려놓고 있다. 국경 장벽이 없다는 이점이 부각되면서 해외 명문 대학들이 잇달아 가성비 높은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과목별 가격 책정, 인공지능(AI) 조교 등 그야말로 AI 맞춤형 교육이다. 국내 온·오프라인 교육의 질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해외 온라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 번 경험한 이상 코로나 이전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이 흐름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대학 진학에 대한 회의감도 커지고 있다. 신기술의 등장과 노동시장 변화로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대학 졸업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인구 감소로 일자리보다 일할 사람이 모자랄 시기가 온다지만, 그때는 또 그 이유로 대학 진학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학 진학률 60~70%대가 선진국처럼 30~40%대로 추락하는, 그것도 갑자기 뚝 떨어지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가까이 오고 있는지 모른다.

‘내 일자리는 내가 만든다.’ 창업 붐도 대학에는 위기 신호다. 꼭 대학을 나와야 창업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펀드가 스타트업 창업가를 판단하는 잣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 등이 출범시킨 ‘1517 펀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 불이 붙은 종교개혁처럼 세상을 뒤집어보자는 꿈을 갖고 대학을 박차고 나오는 중퇴자가 지원 대상이다. 한국에서 비슷한 펀드가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기업이 참다못해 인력 양성에 나서고 있는 것 역시 의미심장한 신호다. 구글처럼 LG AI연구원은 사내 교육 인증서(certificate)를 대학 졸업장, 나아가 석·박사 학위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실험에 들어갔다. 네이버·카카오의 소프트웨어(SW)·AI 교육이, 삼성전자의 청년SW아카데미가 정부가 지정하는 SW중점대학을 위협하는 세상이다.

‘대학=고등교육’ 시대는 끝났다. 대학은 더 이상 고등교육 독점자가 아니다. 기존 고등교육과 대학이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라면 미래가 요구하는 고등교육 정의와 대학 모델은 무엇인가. ‘대(大)전환’은 기존의 ‘지배적 표준’이 막을 내린다는 뜻이다. 누가 새로운 지배적 표준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전환 시대를 맞아 수많은 변종이 튀어나와 경쟁하면서 최고의 적응자가 지배적 표준이 될 것이란 점만 추측해 볼 뿐이다.

대학 공멸을 막을 마지막 카드는 있다. 정부가 재정을 퍼붓고, 특별법을 만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정치는 대학을 통제하는 등록금 규제를 즉각 풀어야 한다. 교육부는 더 이상 위선적인 ‘대학의 자율 혁신’을 말하지 말고 대학정책을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 대학 입시에서 손을 떼고, 지금까지 없던 대학 모델이 등장할 수 있게 대학 설립 요건의 ‘전속 개념’도 없애야 할 것이다. 진입의 자유가 있다면 퇴출도 ‘좋은 선택지’가 되게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진짜 자율 혁신은 ‘각자도생’이다. 죽든 살든 대학에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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