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서로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들 기업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올해 초 나란히 벤처캐피털(VC)을 설립한 것이다. 역대급 호황을 맞은 기업도, 전례 없는 위기를 겪은 기업도 ‘포스트 코로나’의 해답을 스타트업 투자에서 구하기로 했다.
구글(구글벤처스), 인텔(인텔캐피털), 바이두(바이두벤처스), 상하이자동차(사익캐피털) 등 글로벌 공룡들은 CVC를 앞세워 전 세계에 연간 30~50건씩 투자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스타트업들은 투자 유치와 동반성장의 기회를 얻게 된다.
올해 상반기 전체 미국 VC 투자 건수는 반기 기준 역대 최다인 7058건에 달했는데, 이 중 44%가량이 CVC 등이 투자한 건이다. CVC 투자는 2~3년 전만 해도 전체 벤처투자의 4분의 1 남짓이었지만, 어느새 전통 VC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전 세계적인 CVC 열풍에서 그동안 유독 소외된 나라가 한국이다. ‘대기업의 벤처투자는 탐욕’이라는 인식과 금산분리 규제가 기업의 벤처투자를 꽁꽁 막았다. 글로벌 벤처투자 생태계에서 한국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는 통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중국에서 2019년 이후 유니콘 기업에 등극한 기업은 63곳에 이른다. 이 중 63%는 AI, 하드웨어, 바이오, 사이버보안, 자율주행 등 이른바 첨단 분야의 기업 간 거래(B2B) 영역에 있다. 미국은 같은 기간 301곳의 유니콘 기업 중 82%인 247곳이 첨단 분야 B2B 기업이다.
정부는 CVC를 내년부터 허용하기로 했다. 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CVC가 소외된 국내 혁신 스타트업을 키우는 젖줄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여전히 얼기설기 남아 있는 규제 때문이다. 국내 CVC들은 기존 VC보다 차입 기준이 까다롭다. 외부 자금 유치도 전체 펀드의 40%까지만 해야 한다. 해외투자는 사실상 막아놨다. 여전한 금산분리 프레임으로 투자 규모와 투자 대상을 모두 규제한 것이다. 한 투자업체 대표의 표현처럼 “육상 경기에 참여하게 길을 터줬지만 초단위 승부를 앞두고 한국적 상황을 감안한다며 한복을 입혀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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