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불쉿 잡(Bullshit Jobs)》에서 쓸모없는 일자리인 ‘불쉿 직업’이 자본주의의 위계에 따라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불쉿은 ‘쓸모없는’ ‘엉터리’ ‘쓰레기 같은’ 등의 의미를 지닌 비속어다. 저자는 불쉿 직업이란 유급 고용직인데 그 업무가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로 정의한다.
단순히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쓸모없는 일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는 사회주의 국가나 공공 부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민간 기업에서도 이런 일들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불쉿 직업을 제복 입은 하인, 깡패, 임시 땜질꾼, 작업반장 등으로 비유한다. 제복 입은 하인은 상사나 관리자를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보좌관이나 비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칭한다. 이들에게 쓸모없는 업무를 배당하고 감독하는 관리자들이 작업반장이다. 깡패는 광고, 마케팅, 홍보 업무 종사자들과 같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공격적으로 강요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불쉿 직업이 늘어나는 건 현대 자본주의가 중세 봉건제도를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봉건시대에는 영주가 선물과 하사품이라는 형식으로 장인과 농민들에게 수익을 배분했다. 금융자본주의가 발달한 현대에서는 기업들이 상당 부분의 수익을 금융산업을 통해 얻고 대부분의 부가 상위 1%에게 몰린다. 그 아래로 끊임없이 계층이 생기며 할당과 분배에 기초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다소 과격해 보이지만 일과 삶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틔워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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