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의 한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A씨는 최근 화상회의를 통해 직장 상사와 개별면담을 진행하다가 당황스러운 얘기를 들었다. 인사담당 부서에서 A씨의 근무평점이 좋지 않다고 했다는 것. 앞으로 진행할 업무를 주 단위로 계획을 세워 팀장에게 제출하라는 요구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1년 넘게 재택근무 중인 A씨는 "지원부서의 일은 업무 성과가 수치화되기 어려운데 마치 출근하지 않으면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며 억울해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이처럼 코로나19 확산세로 인한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는 가운데 직장인들이 '정량평가' 강화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재택근무 때문에 직원들 모습을 보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업무 능력을 오로지 숫자로 판단하는 정량평가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A씨는 "재택근무 초반에는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측면에선 오히려 비효율적인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B씨도 "개발자처럼 업무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직무는 정량평가가 본질적으로 맞을 수 있지만 지원부서나 영업부서는 업무 노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며 "계속 재택근무를 할 거라면 회사가 업무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재택근무로 성과에 집중하다 보니 직원별 능력차가 뚜렷하게 드러나 업무 배치에 효율적이란 목소리도 있다. 서울 소재 한 금융회사 임원 C씨는 "오프라인에서 함께 근무할 때 일을 잘 하던 직원이 재택근무할 때도 잘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성과 외에 중요한 부분도 있다지만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서 원래 부족하던 직원이 잘하거나, 잘하던 직원이 못하는 경우는 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 소재 IT 기업 직원 D씨는 "재택근무 시에는 아무래도 상사가 근무에 일일이 관여하거나 즉각 수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보니 임원들이 성과가 좋고 일 잘 하는 직원만 찾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며 "일 처리가 느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들은 재택근무 속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2021년 주요 대기업 단체교섭 현황 및 노동현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실시한 기업은 68.5%, 미실시 기업은 31.5%였다. 재택근무에 따른 업무 효율성 질문에는 '감소'했다는 응답이 46.1%로 '증가'했다는 응답 10.1%보다 약 4.6배 더 많았다. '동일하다'는 응답은 43.8%였다.
해외에서도 재택근무에 대한 논란은 뜨겁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당초 10월 사무실 복귀를 추진하던 애플은 내년 1월로 미뤘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실리콘밸리에서 재택근무의 '비효율성'을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쿡 CEO는 지난 4월 인터뷰에서 "화상회의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냈다.
애플은 직원들의 빠른 사무실 복귀를 위해 이달까지 코로나19 백신 접종 여부를 자발적으로 보고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이를 토대로 사무실에서의 코로나19 대응과 근무 규정을 만드는 데 활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직원 10% 정도는 코로나19가 잦아든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도 생각을 바꿨다. 그는 "모든 직원을 사무실로 복귀시키는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화상회의가 오프라인 회의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코로나19로 깨달았다"며 "직원들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메타버스'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재택근무에 호의적이다. 페이스북은 내년 1월부터 유럽 7개국에서 영구 재택근무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도 좋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특히 가상현실에 대한 기술이 계속 진화하면서 얼마든지 오프라인 작업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위터 역시 지난해부터 북미와 유럽 지역 직원들 대상으로 당사자가 원할 경우 영구 재택근무가 가능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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