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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기 다른 모습과 표정의 앵무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원색을 비롯해 청록색과 주황색 살구색 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채로운 색이 한데 모여 배경의 노란색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앵무새들의 독특한 조형은 서로 퍼즐처럼 맞물려 각자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목판화를 연상시키는 굵은 선과 거친 질감이 주는 강렬한 인상과 달리 작품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따뜻하게 포용하자는 의미를 담은 박선미 작가(60)의 ‘네메시스 2021’이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앵무새 화가’ 박선미 초대전 ‘Me, Myself, and the Bird:2021’이 6일 열린다. 작가가 책과 음악, 일상에서 얻은 깨달음 등을 앵무새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 24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박 작가는 “앵무새는 영리하고 표정이 풍부한 데다 같은 종이라도 색과 무늬가 저마다 달라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적합한 소재”라고 설명했다.
앙증맞고 귀여운 외견과 달리 그의 작품에는 깊은 인문학적 사유가 녹아 있다. 네메시스 2021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16세기 인문학자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의 평전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린 작품이다. 개성 넘치는 색과 조형의 조화를 통해 카스텔리오가 생전 설파한 관용과 공존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내면의 감정을 책을 통해 구체적인 메시지로 승화시킨 뒤 작업을 시작합니다. 예컨대 이번 전시에 나온 ‘합창’은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를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베토벤의 전기 여러 권을 읽은 뒤 말년의 베토벤이 곡을 통해 표현한 인류애와 화합의 정신을 그렸지요.”
홍익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박 작가는 KBS 라디오 작가 등으로 일하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목판화를 새기기 시작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이 느낀 깨달음과 감동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였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아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단체전 등 다양한 곳에 작품을 걸었다. 아크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08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 등에서 아크릴 그림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졌다.
“목판화를 찍으면 물감이 마르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립니다. 그런데 아크릴 물감은 금세 말라서 순간적인 감정과 깨달음을 단숨에 그려낼 수 있어요. 여러 색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다양한 아크릴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드는데, 2~3일간 물감을 굳히고 난 뒤 칠하면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질감을 연출할 수 있지요.”
전시장 한쪽에는 작가의 긍정적인 인생관을 팝아트 형식으로 풀어낸 ‘BAM’ 연작이 걸렸다. 화려한 색채와 뚜렷한 선, 뭔가 터지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 ‘BAM!’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일견 엉성해 보이는 구성을 통해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설명이다. ‘앨리스 원더랜드’ 연작은 독특한 배경의 질감과 콜라주 기법을 통해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박 작가는 “톨스토이의 동화처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지만 여운을 남기는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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