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사업장에서 노조에 차량을 제공하는 경우, 노조 조합원 수 규모에 따라 차량을 배분하는 게 법 위반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또 조합원 숫자는 '체크오프'를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도 합리적이라는 판단도 함께 나왔다. 체크오프란 노조의 요청에 따라 사용자가 노조 조합원의 임금에서 조합비를 일괄 공제해 노동조합에 건네는 제도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이상훈)는 지난 8월 19일 주식회사 포스코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청구한 공정대표의무 위반 시정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포스코는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소속의 포스코지회(지회)와 한국노총 소속 포스코노동조합(포스코노조)이 있는 복수노조 사업장이다.
포스코는 2018년 단체교섭을 체결하면서 단체협약기간인 20개월 동안 노동조합에 렌트카 3대를 제공하기로 결정했지만, 노조 간 차량 배분을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문제됐다. 지회는 2019년에는 최소 2대를 제공해 달라 요청했다 회사로부터 거절당하기도 했다.
결국 포스코는 조합원 숫자에 따라 차량을 배분하기로 결정했다. 조합원 숫자가 6500명인 포스코노조에게는 2대를 온전히 제공하되 나머지 한대는 20개월 중 15개월은 포스코노조에게, 5개월은 지회에게 배분하기로 했다. 지회가 주장하는 조합원 숫자는 3300명이었지만 체크오프를 기준으로 하면 600명이다.
이에 지회는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이유로 시정신청을 냈다. 포스코와 포스코노조가 지회를 불합리하게 차별했다는 주장이다. 경북지노위와 재심을 담당한 중노위 모두 지회측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하고 시정명령을 내리자 포스코가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중노위의 재심판정을 취소하고 "차량 배분 방식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며 포스코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지회는 근로시간 면제한도(타임오프)를 배분할 때도 체크오프를 기준으로 조합원수를 결정하는 것에 동의한 바 있고, 포스코가 차량 배분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 것일 뿐”이라며 “지회는 회사 제공 차량이 3대인데도 자신에게 2대를 제공해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을 뿐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지회는 “조합원으로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아 계좌이체로 조합비를 납부하는 조합원들이 많다”며 체크오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체크오프를 하게 되면 회사에서 조합비를 공제하면서 누가 조합원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회가 주장하는 조합원 수는 3300명이지만 체크오프는 600명에 불과해서 차이가 큰데도, 조합원수를 증명할 증빙자료를 제출 못하고 있다”며 “지회와 포스코노조의 사이가 악화된 점을 고려하면 체크오프를 기준으로 배분한 것은 합리적인 방식”이라고도 꼬집었다. 두 노조는 조직화 과정에서 경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갈등을 빚어온 바 있다. 노조 사이에서 협의로 풀어나가기 어렵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또 법원은 사무실과 달리 차량은 조합의 일상 업무에 필수적이지 않다고도 봤다. 재판부는 “사무실은 사용자로부터 제공을 받을 수 밖에 없지만, 차량은 스스로 구매하거나 빌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량은 이동에 필요한 편의적 요소일 뿐”이라며 “지회가 차량을 활용할 수 없는 시기가 발생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노조 활동에 질적인 차이가 따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해 포스코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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