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구성된 다층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중추역할을 맡고 있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인구 고령화로 재정 안정성을 위협받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퇴직연금은 적립금이 지난해 말 기준 약 255조원에 이르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낮은 수익률이다.
퇴직연금은 크게 근무기간과 평균 임금에 따라 정해지는 확정급여(DB)형과 가입자가 스스로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이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DC형의 83.3%가 원리금보장상품에 가입돼 있다. 장기수익률은 5년 기준 1.78%, 10년 기준 2.63%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수익률로는 노후를 대비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DC형은 가입자 스스로 금융 역량을 갖추고 자산 배분 및 운용을 전제로 하는 제도인데, 근로자가 근로활동과 병행하며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해서 자산운용을 장기간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DC형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한 디폴트 옵션 제도가 연금 선진국에서 탄생한 배경이다.
미국과 호주는 정부가 디폴트 옵션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가입자의 ‘운용지시권’을 전문성을 갖춘 ‘금융회사’에 이관, 가입자가 개별 투자전략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회사가 지정한 디폴트 상품에 자동 투자하도록 해 가입자의 직접운용에 따른 어려움을 해소하고 있다.
미국은 1981년 ‘401K제도’를 도입하면서 QDIA라는 디폴트 옵션을 도입해 연 7%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고, 호주는 1992년 ‘슈퍼애뉴이션제도’를 도입한 뒤 MY슈퍼라는 디폴트 옵션을 시행해 2000년대 이후 연평균 7%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성장·저금리가 고착화되고 있다. 기존 예금 금리만으로는 인플레이션조차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강제로 누구든 디폴트 옵션을 가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자신이 없을 때, 나를 대신해 전문가가 운용할 수 있도록 하나의 옵션을 주자는 의미다.
올해 초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진행한 디폴트 옵션 제도 관련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1년간 운용 지시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근로자가 63.5%였고, 미운용 지시 사유는 금융지식 부족과 금융회사가 알아서 운용해주는 것으로 아는 등의 오해도 상당했다. 디폴트 옵션 도입 찬성 비율도 78%에 달했다.
장수가 리스크가 아닌 축복이 되게 하려면 노후 생활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든든한 자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은퇴 후 생활을 걱정하며, 노후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이런 국민의 불안을 정부는 디폴트 옵션과 같은 제도로 보완해주고, 금융회사는 소중한 자산을 믿고 맡겨주는 가입자에게 최선의 노력과 결과로 보답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장기적으로 ‘윈윈’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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