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설익은 '위드 코로나'로 희망고문하는 정부

입력 2021-09-09 17:29   수정 2021-09-10 00:04

올가을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A씨는 요즘 머리가 아프다. 코로나19로 미뤄왔던 결혼식을 가을에 치르고 싶지만, ‘불러야 할 사람’에 비해 ‘부를 수 있는 인원’(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최대 99명)이 턱없이 적어서다.

A씨는 10월 말 또는 11월부터 시행한다는 ‘위드(with) 코로나’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져 결혼식 인원수 제한도 풀릴 것이란 기대에서다. 하지만 최근 방역당국이 “방역체계가 바뀌어도 급격한 거리두기 완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혼란에 빠졌다. A씨는 “위드 코로나를 하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더니 무엇이 바뀌는지, 언제부터 할 것인지 알려주지 않아 답답한 마음뿐”이라며 “결혼식을 아예 내년으로 미룰지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위드 코로나 정책을 두고 오락가락하면서 국민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위드 코로나는 코로나19 확진자 규모를 억제하기보다 위중증 환자·사망자를 집중 관리하며 방역과 일상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방역체계다. 유럽 등 해외에선 이미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며 방역 규제를 풀고 있다. 고강도 거리두기 정책으로 피로도가 누적된 국민의 관심이 위드 코로나에 쏠리는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는 대로 영업 정상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위드 코로나의 핵심인 ‘언제’ ‘어떻게’ ‘무엇을’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아직 학문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위드 코로나에 대한 명료한 정의가 없다”며 “위드 코로나의 개념을 정립해나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위드 코로나가 시행되면 국민의 일상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위드 코로나는 곧 ‘위드 마스크’”라며 “방역체계가 바뀌어도 마스크는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드 코로나가 무엇인지 정의도 안 된 상태에서 일단 ‘이렇게 된다’보다 ‘이건 안 된다’부터 논의하는 것이다.

시점도 제각각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최근 “10월 말부터 위드 코로나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방대본은 “방역체계 전환의 정확한 시기를 현시점에서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의료계에선 정부가 명확한 목표도, 방법도 없이 ‘공허한 위드 코로나’를 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마상혁 경상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위드 코로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라며 “정부가 비밀리에 전략을 짠 뒤 갑자기 선언하듯 발표하는 게 아니라, 국민과 소통하며 그 기준을 마련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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