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50년대 중반 이후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1980년대 초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1만2900달러와 비슷한 1만30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와 같은 고도성장의 주역은 수출이었다. 일본은 대미(對美) 수출을 통해 많은 무역흑자를 냈고, 수출이익을 가능한 한 많이 남기기 위해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고정환율제는 환율 변동폭을 제한하여 국제거래를 할 때 공동화폐를 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게 한다. 특히 무역거래 시, 화폐의 가치 차이로 발생하는 환차손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에 대미 수출에서 짭짤한 수익을 얻는 동안, 미국 제조업은 일본의 저가 제품에 밀려 치명타를 입었다. 이에 대책을 강구하던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 가치를 낮췄다.
그 결과, 1년 사이에 엔·달러 환율이 반 토막 났고, 더 이상 저렴한 가격에 좋은 물건을 미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되면서 일본의 수출산업에 제동이 걸렸다. 엔화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일본의 거품경제는 끝내 붕괴하고 말았다. 일본 정부가 투자행위를 억제하고자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금리가 너무 낮아서 경기가 과열됐다고 생각했고, 금리를 높여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금리를 인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금리 인상 정책 역시 일본 정부의 기대와 예상을 깨부수는 결과로 나타났다. 금리 인상을 기점으로 거품이 붕괴되면서 일본의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먼저 주식시장이 주저앉았고, 잇달아 부동산시장이 폭락했다. 거품경제 시절,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샀던 사람들이 대거 자살했고 실물 투자가 아니라 부동산 투자에만 열을 올리던 기업은 줄줄이 도산했다. 참혹한 현실에 일본 사회는 절망했고,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장기 침체의 늪으로 가라앉았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나라가 양적완화를 통해 거품경제를 일으키고 있다. 돈을 풀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방만함에 취해 있는 것이다. 양적완화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은 초반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적완화 정책의 본질은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이다. 인위적인 시장 개입이 시장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다. 양적완화 정책은 중앙은행이 부실 금융회사의 채권을 사들이면서 도산 위기에서 구해주는 것이 요점이다. 금융회사의 부실을 국민 세금으로 구제하면서 합리적인 구조조정을 가로막을뿐더러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
또한 양적완화 정책의 거품은 신흥국의 위기를 촉발할 위험이 있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세계 곳곳에 달러가 무제한 풀리면서 신흥국 내에서는 투자가 활성화되었다. 때로는 투자 과열 현상이 일어날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 달러가 다시 회수되면 어떻게 될까? 보나마나 신흥국 금융시장은 심하게 요동치게 된다. 그리고 양적완화 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증가한 외채가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돌아오며 재정건전성에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는 신흥국발 금융위기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양적완화에 중독된 거품경제에 현혹되지 않고, 정부의 인위적 시장 개입이 아니라 시장경제 본연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억지로 경제를 떠받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스스로 자율적으로 경기를 살리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품이 꺼지는 순간, 더 지독하고 끔찍한 최악의 경제위기가 덮쳐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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