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는 전세계 각지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몇몇 기업이 헤드램프를 비롯한 여러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떤 기업도 테슬라 납품 사실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테슬라의 눈치를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부품업체의 슈퍼갑으로 불리는 테슬라도 꼼짝 못하게 하는 제품이 있다. 바로 반도체다. 전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부족 상황에서 테슬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9일 로이터 등 외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이메일에서 3분기 차량 인도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반도체 수급난을 극복하고 전기차 생산을 최대 한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3분기 초 극심한 부품 부족에 시달렸기 때문에 부품난의 파고가 이례적으로 높다"며 고객 차량을 인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어 반도체 부품 수급난 등에 대해 "테슬라 역사상 가장 큰 파고이지만 우리는 끝까지 해내야 한다"며 "최대한도로 생산해 상당한 수준으로 3분기 차량 인도 숫자를 반드시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다임러의 올라 켈레니우스 CEO는 "3분기에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면서 "4분기에는 회복이 시작되기를 희망하지만 생산 시스템 회복에 불확실성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수요·공급의 구조적 문제가 "내년까지 영향을 주고 그 2023년에야 완화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차량용반도체 부족 현상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은 전기차 판매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기차에는 내연기관차 대비 평균 2.5배의 차량용 반도체가 탑재된다. 자율주행의 선행 기술로 불리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 적용될 경우 최대 4배까지 증가한다.
미국 포드의 유럽이사회 의장인 군나르 헤르만도 이번 독일 뮌헨 모터쇼에서 "전기차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공급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포드 포커스 차 1대를 만드는 데 반도체 300개가 필요하지만, 전기차 생산에는 반도체 3000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와 같은 미래차 시대가 가까워질 수록 차량용반도체 가운데서도 아날로그반도체의 수요가 점차 커지고 있다. 아날로그반도체는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빛·소리·압력·온도 등 자연계의 각종 아날로그 신호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전체 차량용 반도체에서 아날로그 반도체는 약 60%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차에는 이보다 많은 아날로그 반도체를 사용한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모두 외부 시각 정보를 비롯해 온도와 압력 등 다양한 아날로그 신호를 받아들여 디지털로 전환하는 센서가 많기 때문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1조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의 수혜를 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인프라 투자 예산안에는 전기차 충전인프라에 75억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50%를 친환경차로 대체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아날로그반도체 기업간 인수합병도 활발하다. 아날로그반도체 기업 아날로그디바이스(ADI)는 동종업체인 맥심인터그레이티드 프러덕츠(MXIM) 인수를 완료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ADI는 지난해 7월 맥심을 21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뒤 각 국가 관계당국의 승인 절차를 거쳐 이날 인수합병을 마무리 했다.
아날로그 반도체 부문 시장 점유율 2위 업체인 ADI(9%)는 7위 맥심(4%) 인수로 업계 1위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의 점유율 19%에 근접하게 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아날로그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를 고루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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