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전체 인구의 30%인 1억 명 이상에 대해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 연방 공무원과 의료계 종사자뿐 아니라 100명 이상 민간기업 직원들로 대상 범위를 넓혔다. 또 백신 거부자들을 향해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고 경고했다. 백신 접종률이 오르지 않고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세가 이어지자 바이든 대통령이 초강수를 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해당 고용주는 직원들이 백신 접종을 받거나 후유증으로 고통받을 경우 유급 휴가를 주는 규칙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런 지침을 어기는 기업은 위반 건수당 최대 1만4000달러(약 164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백악관은 100명 이상 민간기업 관련 대상 근로자 수를 8000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0만 명 규모인 연방정부 직원뿐 아니라 연방정부와 거래하는 수백만 명의 일반인도 반드시 백신을 맞도록 했다. 그동안 이들에겐 백신을 맞지 않으면 정기적으로 항체 검사를 받거나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의 다른 선택 사항을 줬는데, 앞으로는 무조건 백신을 접종하게 했다. 다만 의학적인 이유나 종교적 배경이 있는 사람에 대해선 예외를 허용한다. 예외 인정 사유가 없는데도 백신을 맞지 않는 연방정부 직원은 해고 등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주지사들에게 교직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라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의료 종사자에 대해서도 백신 접종을 요구했다. 미국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어(65세 이상 대상)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대상)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의료시설 직원도 무조건 백신 접종을 마쳐야 한다. 해당 종사자 수는 1700만 명 정도로 추산됐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가장 광범위한 방역 조처”라며 “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6개월 만에 코로나19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한 이유는 그만큼 현재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에선 델타 변이 확산으로 하루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가 각각 15만 명, 1500명대로 늘어나고 있다. CNN은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일부 병원이 의료 서비스 제공을 제한하기 시작했다고 이날 전했다.
확진자가 늘고 있지만 백신 거부자 비율은 20%대에 달해 백신 접종률은 지난 한 달간 50%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테러의 후폭풍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대응책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염병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도 현재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여전히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태에 있고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통제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며 “이는 공중보건의 위기라는 뜻”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편안하게 느끼기 시작하려면 확진자가 1만 명보다 한참 아래로 줄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마이크로소프트(MS)는 본사를 비롯한 미국 내 사무실 정상 출근 계획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9월 출근을 정상화하려던 MS는 이를 10월 4일 이후로 늦춘 데 이어 코로나19 대유행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아예 날짜를 못 박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앞서 페이스북과 구글 아마존 애플 등도 내년 초까지 미국 내 사무실을 열지 않는다고 밝혔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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