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젤 '연타석 홈런' 앞둔 베인캐피탈, PEF 투자 '행운'과 '실력' 사이[차준호의 썬데이IB]

입력 2021-09-13 05:50   수정 2021-09-13 13:25



20년 남짓한 국내 인수·합병(M&A) 역사에서 '사모펀드(PEF)의 3대 M&A'를 뽑아보면 어떤 거래들이 거론될까요. 개인적으론 KKR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너티)의 OB맥주 매각(원금 대비 5.7배 수익), 어피너티의 멜론(Melon) 매각(6배), 베인캐피탈(베인)·골드만삭스PIA의 카버코리아(6.2배) 매각이 유력 후보라 생각합니다.

사심을 담아보자면 이 중 베인의 카버코리아 거래가 선두에 꼽힐 것으로 생각합니다. OB맥주 거래가 아직 국내에 PEF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2010년 초반이었던 점, 멜론 거래에선 매각 측인 SK텔레콤의 조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점 등을 반영했습니다. 인수 이후 '기업가치를 키워 재매각한다'는 바이아웃(경영권거래) 특성을 고려할 때 화장품 브랜드 'AHC'를 보유한 카버코리아의 '대박'이 업계에 준 충격은 상당합니다. 실제 투자은행(IB)·PEF 진입을 꿈꾸거나 막 입사한 주니어 사이에선 베인의 한국 팀이 이 분야 '락스타'로 떠오른 계기이기도 합니다.

◆'AHC' 신화 쓴 베인…휴젤로 中에 다시 '베팅'

이렇다보니 베인이 카버코리아 인수 후 다음 타깃으로 보톨리눔톡신업체인 '휴젤'을 인수했을 때 업계 관심이 쏠렸던 건 당연했습니다. 베인은 휴젤의 두 공동창업자간 감정의 골이 깊어 티격태격 하던 사이 인수 기회를 포착했고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당시 세계 최대 PE인 블랙스톤과 막바지까지 경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PEF 업계에선 "투자 성공은 인수할 때 고생하면서 흘렸던 눈물 양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는 데, 정말 눈물 쏙 뺄 정도로 인수 시점부터 고생했던 거래로 꼽힙니다.

사실 베인 내부에선 휴젤 투자를 앞두고 기로에 섰습니다. 카버코리아때 효과를 봤던 자신들의 '공식'을 따를지, 아니면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매물을 찾아야 할 지를 선택해야했습니다. 글로벌 5위권 PEF의 한 한국사무소 대표는 사석에서 "투자 회수에 성공한 직후에 떠오르거나 손에 잡힌 투자건은 무조건 백지화한다"고 합니다. 과거의 관성 탓에 객관적 판단이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죠.



베인의 선택은 '익숙함'이었습니다. 카버코리아의 성공을 이끈 '중국'과 '보따리상(따이궁)' 두 키워드를 휴젤에서도 고스란히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카버코리아 성공 배경을 살펴보면 두 키워드가 중심에 있습니다. 베인의 인수 시점인 2016년까지도 카버코리아의 주요 브랜드인 'AHC'는 중국 내 브로커 회사·뷰티숍에 대량 공급하는 B2B(기업간 거래)방식에 의존해왔습니다. 다른 주요 화장품사들이 중국시장 진출을 이미 마무리한 시점이어서 업계에선 대응이 늦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 베인 인수 이후 시작된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로 공식 유통채널을 갖춘 국내 화장품사들이 잇따라 타격을 입으며 상황이 반전했습니다. 알음알음 소비자 사이 인지도를 쌓던 AHC는 중국 정부의 규제에서 빗겨나있었습니다. 사드사태가 잠잠해지던 2016년부터 AHC가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광군제를 기점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없어서 못 구하는 '역주행'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따이궁들이 AHC제품을 입도선매하며 전체 매출의 40% 수준이던 중국향(向) 매출이 70%까지 크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매각 시점인 2017년엔 행운이 잇따르기도 했습니다. 인수자인 유니레버는 성장둔화를 질타하는 주주들의 목소리에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해 워렌 버핏이 보유한 크래프트 하인츠(Kraft Heinz)와 합병이 무산되면서, 분위기를 반전할 '한 수'를 찾아야 했습니다. 특히 최대 시장인 중국 내 점유율을 높일 랜드마크 거래가 필요했던 상황에서 카버코리아가 레이더에 잡혔습니다. 매각 직전 카버코리아가 '앤 해서웨이'를 광고 모델로 쓰며 '글로벌' 브랜드로 탈바꿈한 전략도 적중했습니다. 원금 3000억원으로 1조9000억원의 '잭팟'을 터뜨린 배경입니다. 이정우 베인 한국 대표는 사석에서 "PEF 투자가 성공할 확률은 태양계 수금지화목토천해 8개 행성이 일렬로 서는 것보다 더 적을 것"이라고 후일담을 토로했다고 합니다.(이정우 대표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이공계 출신입니다)



휴젤도 이런 성장 공식을 고스란히 따랐습니다. 휴젤이 생산하는 보툴리눔톡신은 국내와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선 상용화된 제품이다보니 안정성 측면에서 충분한 검증을 받았습니다. 다만 중국 내에선 공식 허가가 나지 않았던 상황이었죠. 이 때문에 중국에선 병원 등 공식 창구에선 엘러간 등 허가를 받은 보톡스를 사용하고, 피부관리소 등을 통한 '블랙마켓'에선 휴젤 제품이 유통되는 등 유통 경로가 뚜렷히 갈렸습니다. 회사를 담당하던 애널리스트들도 휴젤 실적을 전망할 때 관세청 수출 통계의 일정 비중을 반영하는 식으로 '추정'해왔습니다. 점차 휴젤 제품이 입소문을 타면서 보따리상을 통한 매출이 늘기 시작했고, 중국에 공식 판매 허가도 신청한 상황이었습니다.

◆의료사고·中 단속에 위기도…극적인 허가로 기사회생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화장품에서 부작용이 생길 경우 피부트러블 정도에 그칠 수 있지만 보툴리눔톡신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독소는 '살상무기'로 쓰일 정도로 다루기 위험하다는 점이었죠. 실제 2017년 말부터 중국 내에서 이로인한 의료 사고가 사회문제화 되면서 휴젤에도 불길이 옮겨붙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따이공에 대한 규제까지 겹치면서 중국 시장 매출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주가도 인수시기 지분 100% 기준 1조9000억원 수준에서 2018년 6월엔 1조원까지 '반토막'나기도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업계에선 "베인이 이번엔 베트를 너무 길게 잡았다"라는 수근거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년여 암흑기 끝에 베인에 행운이 찾아온건 지난해 10월. 휴젤이 국내 업체 중 최초, 전 세계 업체 중 4번째로 중국 내 공식 판매 허가를 얻으면서입니다. 사실 휴젤은 국내 경쟁사인 메디톡스 대비 6개월가량 중국 특허 신청이 늦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필 이시기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 특허를 두고 법정공방을 이어가는 사이 반사이익을 봤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자국 업체 육성을 의사결정 최우선에 둔 중국 정부가 국내 업체에 추가 허가를 내줄지를 두고도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습니다.

이후부터 회사는 순탄대로를 걸었습니다. 현재 중국 시장 내 공식 판매 허가를 얻은 보툴리눔 톡신 제품은 레티보를 포함 앨러간의 '보톡스', 란주연구소 'BTX-A', 입센 '디스포트' 등 4개 제품 뿐입니다. 이 중 앨러간의 제품은 중국 현지사 제품 대비 5배 가까이 비싸게 책정되는 등 가격 격차도 뚜렷합니다. 휴젤 입장에선 중국 시장에서 앨러간 제품 대비 70~80% 가격대를 유지하고 중국 현지 제품 대비 고급화 전략을 펴 중간지대에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종 인수자인 GS컨소시엄 외에도 LG생활건강, 삼성, 신세계 등 중국 시장 내에서 브랜드가 어느정도 알려진 국내 기업들은 자사의 브랜드만 얹으면 휴젤이 중국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인수를 검토했습니다.



베인 입장에선 그동안의 지난한 기다림이 '두 배' 수익으로 펼쳐진 셈입니다. 다만 이를 운으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것이란 평가도 나옵니다. 인수 시점부터 휴젤 내 균주 출처를 둔 분쟁, 중국 허가의 불확실성, 기존 창업주들의 경업금지 여부 등 위험 요소가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죠. 베인은 그간 전세계 관련분야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자문을 구한 데 이어 바이오 분야 박사급 인력들로 구성된 본사 내 리서치 팀과 협력해 인수 시점부터 회사를 면밀히 탐색했습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자산들이 5년여 기다림의 밑바탕이 됐다는 점은 그 어떤 경쟁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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