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재의 산업지능] 한국 기업 '선진국형 운영시스템' 도입할 때

입력 2021-09-12 17:15   수정 2021-09-13 00:02

필자는 현재 이 칼럼을 미국 테네시주의 클락스빌이란 도시에서 쓰고 있다. 여기에는 LG전자의 세탁기 공장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러지의 타이어 북미 생산 법인이 있다. 현지에서 스마트공장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 중이다. 두 기업 외에 필자의 연구실과 공동연구를 수행 중인 다른 기업들 모두 공교롭게도 미국에 새로운 생산 설비를 구축하거나 계획 중에 있다. 연구원들 사이에서 “이러다가 연구실도 미국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란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첨단 제조산업을 적극 육성하며, 동맹국들과 협력해 새로운 공급사슬망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현지에서 실감하고 있다.

최근 미국 제조산업의 가장 큰 이슈는 인력난이다. 비록 코로나 사태임에도 LG전자와 한국타이어 두 공장은 쉴 새 없이 공장을 가동 중이다. 오히려 늘어나는 주문에 제품 생산량을 더 늘리고 싶어도 못 하는 실정이다. 단순 노동인력뿐 아니라 기술인력, 엔지니어 등 거의 모든 직군에서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 두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내 첨단 제조산업 대부분 사업장에서 이와 같은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결국 제조 경쟁력의 핵심은 인력난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 공급사슬망이 상호 협력 체계로 개편되며 생산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개발도상국에서, 고부가가치 연구개발(R&D)과 기획 설계는 선진국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제조 협업 체계가 구축됐다. 그러나 최근 미·중 무역마찰로 첨단 제조 분야의 국가 전략화와 코로나 사태를 통해 국가 간 공급사슬망 협력 체계의 불안정을 체험하며 제조업의 세계 협력 체계가 위협받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과거 제조산업을 포기했던 선진국들도 제조 자국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점이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제조 기업들은 ‘선진국형 제조 운영 전환’이란 도전을 맞고 있다.

선진국형 제조 운영이란 개개인의 희생과 조직의 충성심에 의한 운영이 아니라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운영되는 방식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제조 기업들의 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지만 아직까지 많은 부분을 개개인의 능력에 의지하는 구조다. 조직 내에서 개인과 조직 간 경쟁 구도를 구축해 상호 협력보다 경쟁에서 이긴 개인과 조직이 살아남게 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선진국형 시스템은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조직과 시스템으로 개인과 개인의 능력을 합쳐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3이 되고 5가 되고 10이 되도록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다행히 발전된 정보화 시스템과 정보통신기술(ICT)로 이 같은 시스템적 제조 운영이 큰 어려움 없이도 가능하게 됐다. 과거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설계가 잘못이냐, 생산이 문제냐, AS가 문제냐로 서로 다투며 책임을 떠밀었지만 이제는 품질관리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상호 협업을 통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의 전 주기적 품질 관리 시스템이 존재한다. 현실의 공장을 가상환경에 그대로 구현하고 실시간으로 현황 파악 및 제어도 가능한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다.

이 같은 새로운 기술을 단순 도입하기보다는 기술을 통해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조직 구성의 시스템화를 고민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그 기술이 들어갈 수 있는 조직과 프로세스의 구조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런 기술을 통해 새로운 조직 구성과 더 나아가 조직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에 제조 거점을 구축한 과거와 달리 미국 등 선진국의 제조 설비 투자가 확대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 추가 투자를 논의 중이며,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 확대를 결정했다. LG에너지솔루션 또한 테네시에 배터리 공장 투자를 검토 중이다. 이들 기업 모두 미국 현지 인력 채용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인재상과 조직 문화를 미국으로 옮겨오기보다 오히려 이 기회에 한국에서 추진하지 못한 과감한 조직 개선과 선진국형 시스템 운영에 도전해본다면 어떨까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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