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시장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명절 대목의 꿈을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에서 26년째 청과물 가게를 운영 중인 구모씨는 12일 이곳을 찾은 기자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추석 연휴를 1주일 앞둔 이날 낮 가락시장은 적막했다. 500여 사업자가 1300여 개 점포를 운영하는 지하 1층 청과시장(면적 3만2000㎡)은 점심 2시간여 동안(오전 11시30분~오후 1시30분) 드나든 손님이 6개 팀에 그칠 정도였다. 구씨는 “코로나19 이후 첫 명절이라 그토록 힘들었던 작년 추석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1년 전보다 손님이 8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이날 가락시장 1층 입구에 있는 청과물 도매가게 23곳 중 17곳은 문을 닫았다. 그나마 문을 연 여섯 곳의 상인들은 “손님이 한 명이라도 오지 않을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가게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청과물 도매상인 조모씨(31)는 “추석 1주일 전이면 가게 앞 도로까지 과일박스가 빼곡히 쌓여 있어야 한다”며 “지금은 평소 물량의 4분의 1 수준밖에 팔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락시장 청과물 가게에서 일하는 김모씨는 “바로 옆 가게에서 확진자가 나온 뒤로는 개점휴업 상태”라며 “전날부터 이틀 연속 손님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그는 “직접 와서 상품 상태를 확인하지 못하니 단골 거래처도 상당수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소매 중심인 지하 1층도 한산했다. 상인회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대목 때 하루 평균 300여 명이 찾던 이곳은 요즘 하루 평균 방문객이 30여 명에 그친다. 문성종 가락몰종합유통협의회장은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가락시장이 완전히 죽어버렸다”며 “월 1억원을 벌던 가게 매출이 3000만~4000만원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말했다. 문 회장은 “당장 확보해둔 과일을 제대로 못 팔고 썩혀버리면 상인들 타격이 매우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횟감을 떠 그 자리에서 먹는 2층 회센터는 썰렁한 분위기였지만 1층 구매장엔 수십 팀이 꾸준히 드나들었다. 한 상인은 “최근 한 달여 동안 장사를 제대로 못 하다가 이제야 약간 회복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와 방역당국은 전통시장발(發) 집단감염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다. ‘불특정 다수가 한 곳에 밀집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지만, 현실적으로 시장 방문을 자제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석을 앞두고 전통시장 활성화에 힘을 싣는 것도 딜레마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13~22일 열흘간 서울 경동시장, 부산 자갈치시장, 수원 지동시장 등 전국 485개 전통시장 주변 도로에 최대 2시간 주차를 허용하기로 했다. 전통시장 이용을 촉진하려는 취지에서다. 서울시가 최근 ‘대형마트보다 전통시장의 명절물품이 더 저렴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데도 전통시장을 찾는 발길을 늘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서울시는 전통시장, 백화점, 종교시설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역 관리와 점검 방안을 강화하겠다고 지난 10일 발표했지만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자체들은 이 같은 상황을 난감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공무원은 “방역당국에서 밀집을 최소화하라고 당부하는 와중에 전통시장을 많이 이용하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러다 추석 직후 여기저기에서 집단감염이 나올까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정지은/장강호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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